1983년에 첫걸음을 뗀 한국추리문학협회는 2년 뒤 한국추리문학상을 제정한다. 2007년부터 여기에 단편 부문을 신설하는데, 이 책 <황금펜상 수상 작품집>이 바로 그 단편 부문의 수상작들이다.
협회나 문학상이 이토록 오래되었는데도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괜히 한국이 추리나 SF 같은 장르 소설의 불모지로 불리는 게 아닌 것 같다. 순수 문학의 존재가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약해져 가는 이 시대에 그나마 장르 소설이라도 남아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지만, 한국은 그 자리를 이미 웹소설에 넘겨준 것 같다. 문학은 순수든 장르 든 간에 독자의 구매 위에서 뿌리를 내린다. 독자가 사서 읽어주지 않으면 성장은커녕 존재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 장르 문학계가 더디게 발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뭘까? 독자의 부족한 관심? 아니면 소설이 재미가 없어서?
한국 경제의 발전사를 돌아보면 아무래도 후자가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문학상들이 일종의 후원을 해가며 세계를 키워가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좋은 시기는 이미 놓치지 않았나 싶다. 웹소설 플랫폼으로 바턴을 넘기면 될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거기도 장르가 그렇게 다양하지는 않다. 이런저런 걸 생각해 보면 앞으로 한국에서 재미있는 SF나 추리 소설을 만나기는 굉장히 어려워 보인다.
솔직히 말해 <황금펜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이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치밀한 구성, 빡빡한 전개, 착착 감기는 글맛, 독특한 소재, 독보적 캐릭터 기타 등등 중에서 그래도 한 가지는 꽉 쥐고 있어, 비록 지금은 아쉬운 면이 있지만 이후가 기대되는 작품조차 꼽기가 어렵다. 단편에서 무슨 구성과 전개, 캐릭터를 찾냐고? 그건 단편이라는 형식을 너무 무시하는 말이다. 단편은 장편을 덜어낸 요약본이 아니다. 장편 사이사이에 쉬엄쉬엄 놀아가며 쓰는 글도 아니다. 단편은 장편보다 훨씬 단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티가 난다.
수상작들이 차지한 지면이 들쭉날쭉한 걸 보면 한국 문학계가 단편에 요구하는 사디스트적 글자수인 1.4만~2만 자의 제한 없이 작가가 꽤 자유롭게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긴 글은 늘어지고 짧은 건 아쉬운 맛이 컸다. 둘 중엔 늘어지는 게 더 별로였다.
공들에 쌓은 글을 너무 쉽게 깎아내리는 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단어나 표현에 지나친 면은 없었나 다시 읽어본다. 이 책을 엮은 사람이나 작가 본인이 읽는다면 충분히 그렇게 느낄만한 부분도 있다. 그래도 직접 사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읽은 뒤 펼쳐놓는 마음이니 이 쪽도 좀 살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