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탑 -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 금융으로 쌓은 바벨탑
아담 레보어 지음, 임수강 옮김 / 더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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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제은행 BIS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우선 지급결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거의 현금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실물 카드조차 구닥다리가 되어가는 실정. 사실상 돈은 디지털화된 신호를 따라 전자 장부에 적힐 뿐 물리적인 이동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은행 앱에 찍힌 내 월급의 지폐 더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매달 우리 회사의 금고에서 은행 금고로 현금이 이동되는 걸까? 어떤 존재의 의미를 확실하게 드러내려면 그것의 부재를 가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지급결제 시스템이 없다면 바로 앞에서 언급한 현금의 이동이 매 순간 일어나야 한다. 카카오뱅크 앱에서 신한은행으로 5만 원을 보냈다? 그 순간 카뱅의 직원은 현금을 들고 신한은행으로 달려가야 한다. 이 돈을 받은 신한은행이 금고에 5만 원을 넣고 당신의 계좌에 적어 넣으면 비로소 이체 완료다.


이 방법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효율적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과거 은행들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자 혹은 양자 간 지급결제를 이용했는데, 이 말은 상호 간의 이체 거래는 일단 장부에만 적어놓고 실제 현금의 이동은 정기적으로 날을 맞춰 이동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퍽 효율적으로 보이는 이 방식도 참가자가 늘어나면 극도로 복잡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청산과 결제를 담당하는 공동기관이 탄생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 기관의 이름을 중앙은행이라 부른다.


모든 은행은 중앙은행(한국은행)에 당좌 계좌를 연 뒤 일정 금액을 예치한다. 대한민국에서는 하루에만 70조 원이 넘는 돈이 손을 바꾸는데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기만 하는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주고받은 돈의 총합이 0이라면 현금은 이동할 필요가 없고 차액이 있다면 그만큼만 중앙은행의 금고에서 또 다른 금고로 이동하면 된다. BIS는 바로 이 기능을 국가 간 거래에서 제공하는 기관이다.


<바젤탑>은 BIS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국가 간 지급결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며, 그 핵심에서 발견할 기회는 무엇인지, 리플 같은 암호화폐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바젤탑>은 정확히 다른 방향을 지향한다. 이 책은 BIS의 기능보다 정치적 역할에 집중한다. 독일의 1차 세계대전 전쟁 배상금을 수취하여 다른 나라에 지급하기 위해 탄생한 이 은행은 이후 나치의 전쟁 경제를 운영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사람들은 각국의 중앙은행을 사악한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신성한 기관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중앙은행은 권력자의 의도나 이해에 따라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 정부의 중앙은행이라 볼 수 있는 BIS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술 했듯 BIS의 역사는 그 어떤 은행보다 정치적 똥투성이로 가득하다.


사실 중립이란 말만큼 허구적인 게 없다. 특정 목적을 달성하려는 집단의 노력을 '정치'라 정의한다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인간의 행위는 정치적이다. 은행이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정치적 통제와 감시를 받는 것 또한 합당한 게 아닐까? 더욱이 단 한 번의 결정으로 수많은 지구인들이 직장을 잃거나 삶이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기관이라면 말이다.


취지에는 상당히 공감하는 바이나 이러한 얘기를 반복해서 지루하게 늘어놓는 게 <바젤탑>의 한계다. 그들의 선택과 존재가 실물 경제에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들을 어떻게 견제해야 하는지는 제시하지 않는다. BIS와 나치의 관계를 부각하여 사람들에게 이 비밀스러운 슈퍼파워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목적은 알겠으나, 그 내용을 400페이지나 반복하면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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