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의 주인 박경리 작가는 1926년에 태어났다. 자기 인생의 첫 20년을 오로지 일제 강점기하에서 보낸 것이다. 그 시절을 직접 체험한 작가가 하는 말은, 그때는 이러저러했다고 들어서 아는 사람이 하는 말과는 차원이 다른 박력이 느껴진다. 물론 그 역사가 너무 옛날이야기가 된 사람들과, 그것을 배워서 아는 사람들에겐 피를 토하는 작가의 심경이 피상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때문에 종종 피해자들은 가해자뿐만 아니라 심지어 같은 민족에게서도 이해할 수 없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당한 건 알겠는데 너무 옛날 얘기잖아. 이제는 미래를 봐야지.'혹은 '뺏기고 짓밟힌 게 뭐 자랑이라고 떠들어. 창피한 줄을 알아.' 같은.


가해자의 입장은 이해한다. 시인하고 사죄하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일 테니까. 솔직히 상상조차 안 될 수도 있다. 설마 우리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저렇게 말도 안 되는 걸? 역시 한국인들은 과장이 심하고 감정만 앞세운다. 그러나 유린된 역사 앞에서 감정이 아니면 무엇을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일본의 신도에는 스사노오라는 신이 등장한다. 폭풍과 바다를 다스리는 신인데, 한반도 이주민을 신화화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는 일본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바다처럼 변덕이 심하고 폭풍처럼 거침없이 분노를 쏟아내는, 통제와 예측이 불가한 민족. 이상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 있다. 툭하면 감정 운운하는 그들의 이면에는 실상 자기 인간성의 부재를 숨기려는 속내가 담겨있는 것이다. 할복자살을 고유한 미의식으로 포장하는 민족. 수치를 겪고 두려워 목숨을 끊지 못하는 자식을 부모가 목을 졸라 살해하는 걸 명예를 지켰다고 칭송하는 민족. 그들의 뿌리에는 인간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문화가 자리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일본의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우리 겨레에도 많다는 사실이다. 위안부 문제가 처음으로 부각됐을 때 그 역사를 지우려고 가장 노력한 것은 바로 대한민국 정부와 시민이었다. 힘이 없어 뺏긴 주제에. 어떻게든 그 수치를 숨기려 자신의 동생과 누나와 언니를 강간의 피해자가 아닌 매춘부로 둔갑시킨 졸렬함. 이 졸렬한 민족은 자신의 형제에게 가해자의 올가미를 그대로 씌워 졸라맸다. 이것이 36년 간 뿌리내린 식민사관의 잔재인지 일본인의 교묘한 언론 전략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민족의 근본적 결함 때문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됐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일본산고>는 오래된 작가의 오래된 글이다. 어법과 단어가 예스러워 의미가 쉽게 파악되지 않는 문장도 많다. 때로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향한 무차별적 비난도 등장한다.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일 관계를 소 닭 보듯 받아들이게 되는 우리의 가슴에 뜨끔한 일침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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