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오의 한국현재사 -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
주진오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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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해왔다. 은은한 망각의 향은 순식간에 역사를 채워 냄새나는 과거를 깨끗이 세탁한다. 앞선 세대가 기록한 역사적 범죄가 늘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사람들에 의해, 똑같이 행해지는 이유다. 이 바보 같은 연극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눈을 번쩍 뜨고 늘 과거를 주시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특히 더 중요하다. 역사를 지우려는 세력과 기록하려는 이들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고개를 과거로 돌리는 것도 힘든데, 돌아봐야 깨끗하게 지워진 백지뿐이라면 무엇을 보고 반성할 수 있을까? 범죄자들은 우리를 어두운 극장 속에 가둬 휘황찬란하게 미화된 역사를 방영한다. 우리의 눈이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는 동안 진실은 불타고 있다. 이건 아니야!라고 소리를 치는 관객에게 옆에 앉은 관객이 정숙을 지키라며 점잖은 훈계를 한다. 여기서 진짜 무서운 점은 극장의 정숙이 범죄자의 강제가 아닌 관객들의 자발적 참여로 지켜진다는 점이다. 역사는 조용한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아니라 광장의 토론 주제가 돼야 한다. 틈날 때마다 읽고 토론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는 매끈하게 편집된 이야기가 되어 우리를 망각의 IMAX로 이끌 것이다.


<주진오의 한국현재사>는 역사학자 주진오가 대한민국의 근현대, 더불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역사 문제를 논평한 칼럼 모음집이다. 대개 이런 책들은 핵심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 구성이 어려운데,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역시 이런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다음 몇 가지 부분에선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었다.


첫째, 역사적 인물에 대한 지나친 우상화가 갖는 문제점이다. 우리는 굵직한 역사를 기록한 인물들을, 특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어떤 초월적 존재로 그려내려 하는데, 이런 점들이 오히려 역사를 움직이는 건 우리와는 다른 '특출한 인간'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길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한두 영웅의 슈퍼파워로 기록되는 것 같지만 실제는 다양한 얼굴의 보통 사람들이 써나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삶 전체를 볼 것인가, 아니면 결과를 따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서재필과 윤치호는 오늘날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로 그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인물이지만 조국을 배신한 건 두 사람 다 마찬가지였다. 단지 한 명은 미국을, 한 명은 일본을 택한 것뿐이다. 서재필은 생의 대부분을 미국인으로 살았고 한국인으로 불리는 걸 거부했다. 윤치호는 완전한 친일파였지만 독립운동가 안창호를 그 누구보다 아끼고 후원했던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공과가 함께한다는 생각은 얼핏 공평한 것처럼 들리지만 친일파의 면죄부로 활용되기에 딱 좋은 논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깊이 생각해 볼만한 주제다.


셋째, 무능한 남성 지배층이 망가뜨린 역사의 대가를 치르는 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다. 병자호란은 조선의 남성 지배층이 얼마나 무능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인데, 결국 청나라에 공녀로 끌려간 건 조선의 여자들이었다. 심지어 그들이 돌아왔을 때 사대부들은 '환향녀(화냥년의 어원)'라는 낙인을 찍어 그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억압하기까지 했다. 위안부 문제도 똑같았다. 대한민국에서 조차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위안부 문제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론화됐을 때 다수의 여론은 '나라 망신을 시키지 말고 조용히 뒈지라'는 것이었다. 여자의 얼굴을 한 역사는 진정 어디에도 없다는 말인가?


<주진오의 한국현재사>가 완성도 높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몇몇 근현대사의 논쟁 거리를 깊이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읽기가 쉬운 데다 관심 없는 부분은 건너뛰어도 무방한 책이니 부담 없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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