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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사 - 대한제국 서양식 만찬부터 K-푸드까지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평점 :
<백년 식사>는 1876년부터 2020년까지, 대한민국 밥상의 역사를 되짚는다. 맛이나 요리에 집중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식사는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가. 피부에 와 닿는 친근한 이야기가 놀랍도록 풍부하게 펼쳐진다.
한 민족의 문화는 결코 독자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치, 외교, 전쟁, 무역 등 세계와의 접점을 늘려가며 문화는 끊임없이 확장과 변화를 이어간다. 그 중심에 분명 음식이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음식에서만큼은 변화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김치와 각종 장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입맛은 다른 세계와 뚜렷이 구분되는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해외여행을 나갈 때마다 트렁크에 꽉꽉 담기는 김치와 라면.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한국인은 국에 밥이라는 사람들. 다른 건 몰라도 음식에 있어서만큼은 난공불락의 보수성을 유지하는 게 바로 한국인의 입맛이 아닌가?
하지만 간장만 놓고 봐도 이는 금방 잘못된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명 진간장이라 불리는 우리 식탁의 지배자는 사실 일제 시대에 들여온 일본식 장유이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인들은 일본식 간장이 달고 깊은 맛이 없다고 싫어했지만 1930년대에 이르러 사람들의 마음속엔 한국이 식민지배를 벗어나기란 어렵다는 생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고급 요릿집과 부유층 주부들은 왜간장을 널리 사용했다. 해방 후 이 공장들은 한국인의 손에 넘어가지만 그들에게 제조 과정과 설비를 뜯어고쳐 재래 간장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김치의 빨간 맛조차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니다. 하나만 더할까? 지금이야 본연의 맛 운운하며 슴슴한 미식의 최정상으로 거론되는 평양냉면도 한참 인기를 끌던 '원조 시대'에는(1920~30년대) 사람들이 자기 입맛에 따라 아지노모도(일본에서 만든 세계 최초의 인공 조미료)를 타 먹었다. 주인이 넣는 게 아니라 식초와 겨자를 치듯, 먹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 넣어 먹었다는 말이다. 이 맛은 이후 가정의 식탁에까지 올라 오랜 시간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백년 식사>는 이 같은 식문화의 변화를 6개의 키워드로 설명한다. 조선의 '개항', 일제 '식민지',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아우르는 '전쟁', 70년대까지 이어진 '냉전', 폭발적 경제 성장의 풍요가 입맛에 침투한 '압축성장', 마지막으로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세계화'.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식품 대기업들의 꼬꼬마 시절부터 호떡이 왜 호떡인지, 멸치 볶음을 누가 왜 먹기 시작했는지까지, 익숙하지만 낯선 이야기가 흥미진진 펼쳐진다.
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없기가 더 힘들 것이다. <백년 식사>는 잘 만든 대중 역사서의 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