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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독 :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자서전
필 나이트 지음, 안세민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9월
평점 :
정말 기가 막힌 책이다. 휴가 땐 원래 철저히 무용한 시간을 보내는데 <슈독>을 집어 든 게 실수였다. 읽는 게 느려 한 시간에 30페이지가 고작이고 그쯤 되면 지쳐서 계속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 책은 손에서 내려놓기가 무섭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강한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지치지도 않고 꼬박 읽기를 며칠, 540페이지의 책을 순식간에 정복해 버렸다.
<슈독>은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이다. 은퇴를 하고 스탠퍼드 소설 창작 과정을 수료한 뒤 직접 쓴 책인데, 대단한 필력에 구성까지 완벽하다. 태어나서 처음 써 본 책이라면 필 나이트는 진정 천재임이 틀림없다. 어딘가 고스트 라이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나이키가 원래 블루리본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을 수입해서 파는 구멍가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 강렬한 혜성 로고가 있었던 게 아니다! 고작 남의 신발을 수입해 팔던 회사가 이제는 오니츠카 따위, 발 밑에 서지도 못할 회사로 만들어버린 동력이 어디서 나온 걸까? 여기까지만 들어도 그 과정이 궁금해진다.
두 번째로 나이키의 창업 연도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64년. 적어도 한 150년은 인류의 신발을 독점해온 것처럼 보이는 회사치곤 상당히 젊은 기업이다. 12년 뒤엔 애플이 창업하는데 IPO 시기는 두 회사가 거의 비슷했다. 신발 제조업이라고 하면 엄청난 구세대 산업처럼 보이지만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혁명과 거의 나란히 달린 최첨단 산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건 바로 이 이야기다. 나이키가 창업을 하던 당시 운동화는 말 그대로 운동할 때만 신던 신발이었다. 그리고 운동은 운동선수들 만의 일에 불과했다. 당시는 취미로 조깅을 한다는 말이 대단히 기괴하게 들리던 시대였다.
"그때는 운동장이 아닌 곳에서 5,000미터를 달리는 것은 미친 사람들이 미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중략)
때로는 달리기 선수를 흉내내기 위해 운동장 밖에서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운전자들은 속도를 줄이고 경적을 울리며, "말이나 타세요"라고 외치고는 맥주나 청량음료를 던지기도 했다. 실제로 존슨은 펩시콜라를 여러 번 뒤집어썼다고 했다."(p.113)
상상이 되는가? 일주일 동안 운동화를 신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을 세어보자. 데님이나 면바지, 슬랙스 심지어 정장에까지 맞춰 신는 게 오늘날의 운동화다. 운동화는 현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완성하는 핵심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빌린 50달러로 자기 집 지하실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 과정의 고단함이 뻔하게 그려질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결론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책은 신기할 정도의 몰입감을 제공한다. 바로 그 현장에서 같이 사업을 하고 있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진다. 요즘따라 매너리즘에 지치고 좀처럼 뭘 봐도 가슴이 뛰지 않는 사람이라면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 이제 막 팀을 운영하게 된 조직 관리자나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저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p.s - 슈독은 신발 매니아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