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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특강
조지프 캠벨 지음, 권영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0월
평점 :
어린 시절 나는 신화에 미쳐 있었다. 중동의 길가메시부터 힌두의 크리슈나, 인드라, 시바 동양의 복희, 여와, 염제, 북유럽의 오딘, 발할라, 이집트의 라, 오시리스, 호루스, 남미의 케찰코아틀까지. 흔해빠진 그리스 신화는 거론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건 그냥 기본이었으니까. 나는 전 세계의 신화들을 수집하며 그것들을 조금씩 잘라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 이런 왕성한 욕구는 조지프 캠벨을 만나면서 무너졌는데, 주범은 그가 지은 <동양 신화>라는 책이었다. 이야기가 아닌 학문으로서의 신화. 그것은 어린 마음을 가득 채웠던 모험의 로망에 찬물을 끼얹기 충분했다.
이제 나는 신화가 인간의 삶과 우리 세계에 대한 상징일 뿐이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됐다. 그래서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을 손에 들었을 때 그 제목이 온전히 나에게 쏟아지는 메시지라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지은이 조지프 캠벨.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신화를 공부하다 보면 지리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여러 문명권에서 굉장히 흡사한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개개의 이야기는 그 지역 환경에 맞춰 조금씩 변형되기는 하지만 큰 틀에선 사실상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류가 공통으로 경험한 역사적 사실에서 찾을 수도 있고 세상을 해석하는 인간 심리 또는 상상력의 보편성에서 찾을 수도 있다. 무엇을 택할지는 자유지만 전자를 굳게 믿는 사람들의 신화는 그 민족만의 평화와 번영을 비는 편협한 신앙으로 변질되려는 유혹을 피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홍수 이야기들을 자신의 신앙을 확증하는 원료로 사용하게 된다. 역시 여호와의 징벌은 실존했던 사건이야! 전 세계 사람들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잖아! 하지만 5분만 시간을 내도 각 민족과 그 신화의 탄생 연도를 시간순으로 줄지을 수 있는 우리가 그런 생각을 고집하는 게 맞는 일일까? 유대인이 나타나기 한참 전에 이미 그런 이야기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었다는 걸 알고 나서도?
이 아름다운 지구에 화약 먼지와 피 폭풍을 일으키는 범인이 누군지를 생각해보자. 신화를 이해한다는 건 결국 우리 모두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홍수의 원인은 엔키의 분노도 여호와의 징벌도 이미르의 죽음도 아니다. 당최 종잡을 수 없는 자연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던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리 선배들의 걱정과 불안이 상상력과 만나 탄생한 이야기들일뿐이다. 한때 그 이야기들은 우리 삶의 토대가 되었고 오로지 우리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신앙이 되었고 때로는 죽음도 무릅쓰는 전사를 만들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류는 끊임없이 성장했고, 이제 내가 진정한 신화의 의미를 알게 된 것처럼 충분히 성숙한 나이가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신화가 갈라놓았던 울타리의 안쪽에서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가선 안된다. 사실상 거짓말에 불과했던 그 신화들을 모두 뽑아낸 뒤 인류 전체, 나아가 이 지구와 우주의 평화를 도모하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 늘 그렇듯 인류를 나아가게 하는 건 바로 그 거짓말, 바로 그 이야기였다.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은 1958년부터 71년까지 쿠퍼유니언포럼에서 조지프 캠벨이 한 강연 25개 중 13개를 묶어 만든 책이다. 강연 모음집이 대개 그렇듯 통일된 주제가 일관되게 진행되는 건 아니라 다소 산만한 건 사실이다. 게다가 조지프 캠벨이 전하고자 하는 건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세계다. 독해의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편협과 증오가 깊게 뿌리내리는 요즘 세상에 생각해볼 만한 것들을 전해준다. 우리는 누군가가 만든 창조물이 아니라 모두 우주의 먼지라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생명들이다. 그것은 인간들만의 관계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저 초원의 톰슨가젤도, 새벽녘 고요히 흐르는 강물도, 우리가 딛고 사는 이 지구도, 사실은 모두 '하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