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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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말을 더듬는 열네 살 소년이 언어 교정원을 다니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소년의 내적 고백이 주를 이루는 이야기라 딱히 드라마틱한 줄거리는 없다. 읽는 이에 따라서 상당히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는데, 다행히 책이 얇다.


'언어 교정원'이라는 단어에서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한 소년의 유사가족 이야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맞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내가 말하고 있잖아>에 대한 이야기는 다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루한 줄거리에 뻔한 결말까지, 어쩌면 이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그 뻔한 결과가 나름 묵직한 감동을 준다. 뻔한 것도 사실은 기술인 것이다. 그걸 어떻게 극적으로 다루느냐, 이야기가 수천 년 간 똑같은걸 반복하면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은 데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건 참 희한한 게,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쯤 더 큰 나락을 준비해 준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그 나락의 나락의 나락의 끝도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누가 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완벽한 어둠을 이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희미한 빛'이라는 말이 있다. 어둠이 깊을수록 희망의 불씨는 더 크게, 더 따뜻하게, 더 밝게 느껴진다. 아무리 작더라도, 그 순간 다가와준 손들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잔인한 말이지만, 내가 눈물을 흘릴 때 옆에서 같이 울어줄 사람이 있다면 사는 게 더 쉬워진다. 슬픔을 나눈다는 건 그냥 좋으라고 하는 소리 같고, 사실은 내 슬픔을 옮겨주는 것이지만, 각자가 맞는 차가운 현실을 녹일 수 있는 건 결국 이 연대뿐이다.


말더듬이들의 현실은 몇 배나 더 차갑다. 인간은 의사를 말로밖에 전달하지 못하는 촌스런 동물이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종종 생각과 감정도 없는 것으로 무시된다. 사실은 마음과 머릿속에 화산처럼 타오르는 용광로가 있는데도. 소년을 도와주겠다며, 고쳐주겠다며 다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런 사실을 모르는 멍청이들이었다.


잘해주는 사람에게 속지 말자. 소년은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선한 얼굴로, 다 이해한다는 듯 다가오는 사람들 모두 사실은 소년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바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한 거니까. 그리고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갑게 떠났으니까. 어느 순간 소년도 자기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타인의 냉대와 무시가 자기혐오로 향할 때 마음은 더 단단하게 굳어버린다. 밖에서 가두는 게 아니라, 안에서 잠기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엄마의 애인을 폭행한 죄로 경찰서에 잡혀간다. '거지 같은 년이 병신 같은 아들을 감싼다'라고 소리를 지르는 추한 남자 앞에서 모자는 고개를 숙인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나타는 것은 놀랍게도 언어 교정원 사람들이었다. 말 더듬이들이 뭘 할 수 있겠냐고? 그들은 각자 할 수 있는 단어를 하나씩 모아 소년에게 갑옷 같은 말 한마디를 만들어 입힌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늘 닫고 살았던 소년의 마음에 처음으로 작은 균열이 일어난다. 그의 마음속에서 뭔가 콸콸콸 쏟아지기 시작한다.


p.s - 짜내고 짜내 단어 하나를 꺼내 놓는 말더듬이는 백지 위에 띄엄띄엄 단어를 늘어놓는 소설가는 모습과 닮아 있다. 그렇게 힘들게 꺼내놓은 말을 재미있네 없네 따지는 일이 때로는 참 천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도 아닌데, 이걸 계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스스로 되묻게 된다. 뭐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나 작가가 이 글을 읽고 상처를 받았다면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도 나도 똑같은 말더듬이일 뿐인데. 잘난 척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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