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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할런 코벤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할런 코밴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싶지 않은데, 유일하게 읽은 두 권이 겹쳐도 너무 겹치는 바람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다. 오랜만에 읽고 싶은 장르 작가를 만났는데 더 나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내가 읽은 두 권의 소설을 간추려 말하면, 할런 코밴의 소설엔 늘 과거를 가진 여성이 등장한다. 당연히도 엄청나게 매력적이라 한 번만 봐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남자 주인공은 그녀를 너무 사랑하는데 어느 순간 여자가 종적을 깨끗이 지운 채 사라져 버린다.
남자 주인공은 한결같이 과거에 지나치게 매여있는 집착남이다. 능력자이기에 범죄의 실상이 가려지지만 하는 짓만 놓고 보면 사실상 스토커가 따로 없다. 아무리 경고를 해도 한 때 사랑했던 여자 친구를 찾는 모험을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면서, 때로는 주변에 무한한 피해를 줘가면서 말이다.
두 남녀는 과거의 극히 일부만을 공유한 사이지만 넘치는 에로스는 과하다 못해 초현실적이다. 전근대적인 멜로 서사와 차이가 있다면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바뀌어 있다는 것. 보호가 필요한 철부지 역할은 남자가 맡고 '널 사랑해서 떠나는 거야' 류의 거룩한 초월자는 여자가 맡는다. 상황도 모르고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남자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 결정적인 위기에 빠졌을 때 여자가 나타나 남자를 구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고 합니다.
할런 코밴의 소설에서 가장 집중할 대목은 기, 승, 전까지다. 그래도 전체의 4분의 3이니 탓할 건 없는 건가? 그러나 전에서 결로 넘어가는 과정은 내리막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폭락을 보여준다. 당사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고작 이 정도 이유 때문에 그 난리를 치른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미국인이 아니어서 그 땅에서 일어나는, 예컨대 <차트를 달리는 남자> 같은 걸 볼 때 나오는 믿을 수 없는 음모과 공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그 나란 총과 마피아, CIA와 FBI, 국토안보부 및 기타 온갖 것들이 다 있으니까.
어찌 보면 이 소설들은 한때 유행했던(내가 본 미드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에피소드마다 무성한 떡밥만 남긴 채 시청자의 입질을 유도하는 미드를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류의 콘텐츠들은 어쨌든 트레일러가 겁나 재밌고 초반 몰입감이 상당하다. 온갖 유혹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시청자들을 끌어다 앉히는 게 가장 높은 장벽인 이 바닥에서 그걸 가장 간단히 뛰어넘는 콘텐츠야말로 효자 중에 효자 아니겠는가?
참으로 공교로운 결과지만 내가 읽은 단 두 권의 할런 코밴은 완전히 동일한 구조와 캐릭터 설정을 갖고 있다. 나머지도 이런 식이라면 더 읽어볼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참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