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 없음 - 넷플릭스, 지구상 가장 빠르고 유연한 기업의 비밀
리드 헤이스팅스.에린 메이어 지음, 이경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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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우편으로 DVD 대여업을 시작했을 때 그들의 경쟁자는 텍사스에 있었다. 규모는 대략 1,000배. '블록버스터'란 이름에 걸맞은 차이였다. 회원수와 독특한 서비스 전략으로 볼 때 넷플릭스는 꽤 성과를 낸 스타트업이었지만 2년 차에 다다를 때까지 수익은 전혀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한해에 적자만 570억을 내는 기업이었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를 블록버스터에 매각하기 위해 몇 달을 공들인 끝에 드디어 CEO를 안티오코를 만난다. 제안한 금액은 5,000만 달러. 거기에 인수 후 넷플릭스가 '블록버스터닷컴을 개발하여 그들의 스트리밍 서비스 파트너'가 되겠다는 제안도 곁들였다. 안티오코는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 뒤에 두 기업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붐!


넷플릭스를 한낱 비디오 스트리밍 기업으로 생각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넷플릭스는 경쟁사보다 한참이나 적은 콘텐츠를 갖고도 한참이나 높은 재구독률을 자랑한다. 그들의 추천 알고리즘은 부지런히 없는 살림을 꾸리며 구독자에게 최적의 콘텐츠를 제안한다. 썸네일은 당신이 클릭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을 소프트웨어가 판단하여 자동으로 생성, 교체한다. 당신이 무엇을 보는지, 어디에서 멈췄는지, 얼마 만에 다시 들어왔는지, 재미를 느끼는 요소가 감독에 있는지, 배우에 있는지, 이야기에 있는지, 아니면 이야기가 펼쳐지는 나라에 있는지를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은 꼼꼼하게 파악한다. 이 데이터들은 단순히 사용자 경험을 높이는데만 사용되지 않는다. 오늘날 넷플릭스를 만든 일등공신, '오리지널 시리즈'는 바로 이 데이터에 기반해 기획된다. 넷플릭스를 기점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도박이 아닌 과학이 됐다.


도대체 어떤 회사일까? 그들의 기업 문화를 정의하는 한마디는 '규칙 없음'이다. 출근 시간도, 근무 시간도, 휴가 규정도 비용도 보고체계도 없다. 넷플릭스의 직원들은 무한한 자유와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 받는다.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유를 사용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일찍이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스스로 반납하고 규칙과 강제가 가득한 권위의 밑으로 복속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사람들을 숨 막히게 만드는 건 자유와 평등인 것이다.


높은 수준의 자유를 감당하기 위해선 알아서 판단할줄 아는 인재가 필요하다. 넷플릭스는 이를 '인재 밀도'를 높이는 일이라고 말한다. 애매한 사람을 뽑아 그들에게 이런저런 가이드를 제공하는 대신 애초에 뛰어난 사람을 뽑아 그들의 판단과 자율에 맡기는 것. 이를 위해 넷플릭스는 막대한 연봉을 제공한다. 인센티브를 포함한 액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넷플릭스는 처음부터 성과급을 연봉에 포함해 경쟁사들보다 20~30% 높은 금액을 제시한다. 거기다 이들은 타사의 스카웃 제안에 적극적으로 응할 것을 장려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현재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확인해 보라는 것이다. 만약 경쟁사가 더 높은 연봉을 제시했다면 넷플릭스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액수에 맞춰 연봉을 인상해준다.


모든 직원이 자율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회사의 현상황을 투명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는 Top Confidential 수준의 극비사항조차 모든 직원에게 공개한다. 그 정보를 들고 경쟁사의 문을 두드릴지, 주식에 투자를 할지, 언론사에 팔아넘길지는 모두 자유다. 그 자유에 따른 책임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러한 투명성은 동료에 대한 피드백에서도 이어진다.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는 위아래가 없다. 그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또는 1:1 면담과 이메일을 통해 수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물론 피드백에는 4A라 불리는 규칙이 있다. 주는 쪽은 Aim to Assist(도움을 주려는 생각으로), Actionable(실직적인 조치와 함께)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받는 사람은 Appreciate(감사하고), Accept or Discard(받아들이거나 거부) 할 수 있다. 이것이 단순히 형식적인 회사 문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사례를 직접 확인해보기 바란다.


이런 문화는 넷플릭스 같은 미국 회사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조차 넷플릭스는 독보적인 기업 문화를 자랑하는 회사다. 뿐만아니라 이 회사는 현재 미국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큰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 설립한 법인에서 넷플릭스는 자신의 문화를 로컬 환경에 맞춰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다.


넷플릭스의 문화에서 가장 부러운 점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피드백이다. 한국 기업에선 모든걸 '좋게 좋게' 처리하는 능력을 높은 수준의 처세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뭘 좋게 좋게 한단 말인가? 나쁜 건 나쁜 거고 못한 건 못한 거다. 비판은 비난이 아니다. 오히려 더 잘해보자는 격려인 것이다. 비판이 충고와 조언으로 포장돼 위에서 아래로만 작동하는 것도 문제다. 실수와 실패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가 겪는 보편적인 일이다. 따라서 비판이 아래로만 이뤄진다면 리더들은 잘못을 자각하고 개선할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이는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물론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땐 항상 과장을 경계해야 한다. 한때 몸담았던 기업들의 문화를 대단한냥 칭송하던 여타의 책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쓴웃음을 지었던가? 하지만 이 책은 나름 쌍방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 조직 문화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도, 모두가 적응을 잘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힌다.


<규칙 없음>은 확실히 대세에 편승해 돈 몇푼을 벌어보려는 얄팍한 기업문화 찬양서는 아니다. 내실과 균형을 모두 갖춘 책이니, 긴 연휴의 끝을 이 책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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