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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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일명 특수청소업을 운영한다. 아마도 그런 일을 처음 겪었을, 다급한 요청 전화를 받고 찾아간 곳에는 집주인이 자신의 집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열쇠 또는 자동키의 비밀번호를 건네준다. 집주인은 떠나고 저자는 집안으로 들어간다. 문 앞에 섰을 때부터 그는 자신이 써야 할 게 방독마스크인지 아니며 방진인지 안다. 죽은 자의 빈방은 구더기들과 냄새가 차지한다. 발견된 시간이 길수록 정도는 심하다. 하지만 아무리 심해도 그건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저자는 장비를 들쳐 메고 하나씩 죽음의 흔적을 지워나간다. 고독의 크기만큼 찐득하게 달라붙은 흔적들을, 저자는 어르고 달래 저세상으로 놓아준다.


남의 죽음으로 밥을 버는 일은 얼핏 잔인해 보인다. 타인의 절망으로 이득을 얻는 일이라니. 하지만 누가 죽든 말든 산 자들의 세상은 계속된다. 산자들의 세상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잔인하다. 죽기 전엔 이러쿵 저러쿵 할 일 조차 없는 데면데면 무명의 이웃이었지만 죽음 뒤에는 온갖 저주의 대상이 된다. 집주인은 집값이 떨어질까 무섭고 이웃은 냄새 때문에 분노를 참지 못한다. 더럽게 재수 없는 일. 나가서 곱게 죽지 못하고 기어이 방구석에서 뒈져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미친놈. 청소를 시작하는 저자를 향해 이웃이 나와 애먼 소리를 지르고 들어간다.


저자는 오히려 기사 한줄에도 기록되지 않는 그들의 죽음을 위로하고 배웅하는 유일한 친구다. 아무리 냄새가 지독해도, 현장이 참혹해도 그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가스관 위에 내걸린 빨랫줄과 눌어붙은 짬뽕 국물과 먹다 남은 피자 조각을 통해 죽은 자의 고독을 이해하고 위로한다. 그는 단 한 번도 부잣집에 청소를 간 적이 없다. 살아생전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은 죽어서도 고독하다. 죽은 지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들.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경찰과 시체를 수거하는 사람들뿐이다. 그들은 신을 신고 들어와 건조한 조사를 마친 뒤 방 여기저기에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간다. 저자는 천천히 방안을 돌아보며 죽은 자의 삶을 복원한다. 그들의 남긴 옷가지에서, 책에서, 잠자리에서, 음식에서, 죽기 전 가지런히 쌓아 놓은 분리수거 쓰레기에서.


그는 이 일을 하기전엔 출판 업계에 몸을 담은 적이 있고 시인으로도 활동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깊은 감정을 담는다. 이 책은 온통 죽음과 그 상실이 가져온 고통으로 빼곡하지만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오히려 위로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설령 내가 그렇게 죽더라도 이 분이 찾아와 내 마지막을 기억해줄 것 같은. 죽은 뒤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만, 아무도 찾지 않을 내 죽음을 떠올리며 외로워지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는 삶이다. 그러니 이런 위로는 무의미하지 않다.


삶과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고 저자는 그 사실을 매일 실감하고 산다. 죽음과 손을 잡고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늘 서늘한 공포가 뒤통수를 오싹하게 만들까?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나쁜 일이 아닌 것 같다. 어렵고 힘들고, 도저히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고난을 맞을 때면 나는 늘 죽음을 떠올린다.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 차분해지면서 힘이 난다. 어차피 죽으면 다 끝인데 뭘, 하고 생각하면 내 앞에 놓인 모든 것들이 하찮아 보인다. 그도 어쩌면 이런 마음이 드는 걸지 모른다.


살아생전 고통에 시달리던 인생도 죽음 뒤엔 평온을 얻는다. 지옥이니 천국이니 하는 말은 뼛속까지 잔인해지기로 작정한 인간들의 악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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