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구애 - 2011년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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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서 긴장을 만드는 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인물을 알고 있는 것과 맞닥뜨리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를 모르는 상황 속에 놓는 것이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둘 모두 확실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야심한 시각 당신이 누군가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고 하자. 당신은 그의 얼굴이 낯익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 탄 뒤 당신은 올라가야 할 층을 누른다. 같이 탄 남자는 자신의 층을 누르지 않는다. 문이 닫히자마자 당신은 그가 얼마 전 뉴스를 도배한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것이 긴장을 만드는 첫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는 좀 더 간단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태어나서 처음 본 모텔이다. 당신은 나체로 누워 있고 옆에는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침대에 토사물을 쏟아 놓은 채 엎드려 있다. 온 몸에 흐릿한 핏자국이 새겨져 있고 바닥엔 찢긴 옷가지들이 널려 있다. 머리는 몽롱하다. 지난밤의 기억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순간 쾅쾅, 누군가 모텔의 문을 두드린다.


편혜영 이야기의 매력은 어둡고, 축축한 긴장이고 이는 모두 미지에서 나온다. 현재 활동중인 소설가 중 이 분야에서 그녀만큼 압도적인 족적을 보여주는 작가는 없다. '호러 퀸'이나 '엽기의 여왕' 이라는 수식은 오히려 그녀에게 누가 되는 찬사라고 생각한다. 자극적 단어로만 포장하기에 그녀가 그리는 어둠은 깊고 풍성하다. 공포는 깜짝 놀라게 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피부에 달라붙어 부단히 파고든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감히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혹은 온 힘을 다해 무시하고 있는 미지의 공포를 향해 자꾸만 고개를 돌려세운다. 마음속 깊은 곳에 굳게 닫힌 철문이 있는데, 그 철문을 누군가 손톱으로 긁는 소리가 난다.


그러나 그 미지를 구현하는 방식이 <저녁의 구애>에서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든다. 내가 읽어온 그녀의 최근작들은 구체적인 사건과 음모 또는 불가해한 상황을 통해 미지의 공포를 형상해왔다. <저녁의 구애>는 그 자리를 '일상'이 차지한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 없이 반복되는 하루. 너무나 익숙해 그 차이를 느낄 수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작가는 우리가 이 일상의 공포를 잘 모르고 있다는 듯 그것을 불가해한 것으로 규정하고 낯설게 만들기를 시도한다. 따지고보면 우리가 숲 속에서 길을 잃는 이유가 사실 사방이 똑같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 아닌가? 길을 잃었다는 공포는 똑같은 시간이 줄지어 늘어선 우리 일상에서야 말로 가장 강력히 드러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저녁의 구애>는 편혜영 월드이 '낮' 버전이 아닐까 싶다. 다른 작품이나 여기서나 인물을 위협하는 건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다. 하지만 '밤' 버전에서 우리는 그게 축축하고, 어둡고, 불길한, 그래서 필시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다줄 거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낮' 버전에선 그게 무엇이냐를 떠나 심지어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지 조차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저녁의 구애>에 실린 단편들이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편혜영의 이야기에 비해 긴장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물론 해석하는 능력에 따라 '낮' 버전이 '밤' 버전 보다 더 큰 공포를 자아낸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잡은 앵글에선 그저 망망대해를 떠가는 보트 한대가 보일 뿐이지만 시야가 넓은 사람들의 눈에는 보트 뒤에서 일고 있는 산더미 같은 해일이 보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나 내가 그녀의 이야기에서 좋아하는 건 끈적하고 어두운 뭔가가 눈 앞에서 꿈틀대는 것이다. 손에 잡힐 듯이 가득한 불길함. 아무래도 <저녁의 구애>는 그런 요소들이 훨씬 추상적으로 표현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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