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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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고기를 좋아한다. 정말로 좋아한다. TV를 잘 보지 않지만 물고기가 나온다면 얘기가 다르다. 나는 한국에서 제작된 물고기 관련 다큐멘터리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봤다. 그런데 책을 꽤 많이 읽었음에도 물고기와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은 거의 없다. 물고기에 대한 내 애정을 시험하기 위해 나는 서점에서 관련 책이 보일 때마다 집으로 들고 온다.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에 내가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는지 말해야 할 것 같다. 그 좋아하는 물고기가 37가지나 나온다니, 바다 생물들과 영혼이 연결된 내가 어떻게 기대를 감출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 책에는 청어, 대구 달랑 두 가지의 생선만 나온다. 37가지 이야기라는 건 이 두 생선과 관련된 이야기가 37가지라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물고기 따위가 세계사를 37번이나 바꿨겠는가, 정도껏 바라야지, 하며 나의 부주의로 잘못을 돌리다가도 어딘지 모르게 사기를 맞은 것 같은 억울함이 몰려온다. 게다가 청어와 대구라니. 과메기에 미쳐있긴 하지만 요새 청어로 과메기를 만드는 곳은 거의 없고 오마카세를 가야 겨우 한 점을 만날 수 있는 생선이다. 대구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 물고기들은 내 일상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그렇다면 방점을 '세계사'로 옮겨야 한다. 나는 물고기만큼 역사를 좋아하니까, 생선을 사이드 디시로 놓고 메인으로 세계사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교보문고에서 수십 주 동안 1위를 차지한 베스트셀러 치고는 너무 산만하다. 다루려는 이야기가 물고기를 중심으로 한 상업의 역사인지,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의 해양 패권 다툼의 역사인지, 말린 생선이 가능케 한 장거리 항해의 역사인지, 그것도 아니면 유럽에 폭발적인 생선 수요를 일으킨 기독교의 역사인지 뚜렷하지 않다. 한자동맹, 네덜란드 독립사, 셰익스피어, 바이킹, 피시 데이, 신교, 구교의 역사를 300페이지에 욱여넣다 보니 초점을 잃고 흔들린다.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겠다.


나라면 왜 청어와 대구였는지를, 아니 왜 청어와 대구이어야만 했는지를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 같다. 두 생선은 왜 유럽 역사의 중심이 됐을까? 맛이 있어서? 잡기 쉬운 데다 많이 잡히니까? 그 필연성에 대한 설명이 없다 보니 저 사람들이 왜 청어와 대구에 목숨을 거는지 공감이 잘 안된다. 이야기는 그냥 처음부터 그들이 청어를 절여먹는데서 시작한다. 솔직히 이 생선은 잔가시와 기름이 너무 많아 그렇게 맛있는 생선은 아니다. 떼를 지어 다니는 데다 그 '떼의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건 알기에 짐작은 가지만, 흠... 이 필연성 부재의 문제는 청어에서 대구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등장한다. 대구는 깊은 바다에 사는 생선이라 잡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는 유럽인들의 마음에 불씨를 댕겼다. 그 동력은 더 좋은 맛을 향한 인간의 미식 욕망이었을까?(청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담백하고 맛있다) 대어에 대한(대구는 최대 신장이 1미터가 넘는다) 뱃사람의 로망이었을까?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는 흥미로운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영국의 어업육성정책에서 프로테스탄트 혁명, 미국의 식민지 건설 역사, 각종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지루한 물고기 이야기를 두서없이 횡보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물고기가 아니다. 역사도 아니다. 아무래도 주인공은 교보문고와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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