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니가 보고 싶어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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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의 소설은 시간을 거스를수록 단맛이 강하다. <덧니가 보고 싶어>는 2019년에 재간한 것으로 실제론 그녀가 스물여섯에서 일곱 언저리에 쓴 소설이다. 무려 10년 전 이야기. 전설의 다케이코 이노우에도 슬램덩크 1권과 26권에선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어느 정도 감안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쓰고 뭔가 묘한 불안감이 들어 다시 책을 펴보니 내가 <덧니가 보고 싶어>를 <지구에서 한아뿐>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위의 문장들은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유효하다는 게 놀랍다. 그녀의 10년 전 장편 소설 두 개는 이제 막 마법의 가루를 쓰기 시작한 초보 요리사처럼 같은 맛이 난다. 제육볶음과 뚝불을 먹었는데도 두 맛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정세랑은 <지구에서 한아뿐>의 지면을 빌려 '이렇게 다디단 이야기'(p.224)를 다시는 쓸 수 없겠다고 말했지만 그건 이제서야 그렇다는 얘기고 당시에는 이런 걸 엄청나게 많이 쓴 게 분명하다. 정세랑은 현재의 인기 덕에 과거가 발굴되는 소설가다. 같은 시기에 쓴 두 개의 장편이 이토록 비슷한 걸 보면 당시 그녀의 인생을 솜사탕 같은 연애감정이 사로잡은 게 분명하다. 정세랑은 누구보다도 자기 생활을 소설에 눌러 넣는 걸 잘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런 연애를 해서라기 보다는, 현실에선 전혀 이루지 못한 연애의 환상들이 단맛으로 응축되어 이야기에 발라진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현재로 소환된 과거는 늘 이런 위험에 처해 있다. 내 친구 중에도 25세 이전의 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로 한 놈이 하나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우리는 현재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나처럼 정세랑의 시간을 거스르고 있는 사람들에겐 눈 앞에 펼쳐지는 과거의 민망함에 표연함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녀의 소설을 고를 땐 반드시 '시간'을 따져봐야 한다.


<덧니가 보고 싶어>는 정세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여자 주인공 재화와 그녀의 전남친 용기가 운명적 재결합을 하는 소설인데, 작중 소설가이기도 한 그녀의 문장들이 용기의 몸 구석구석에 나타나는 게 계기가 된다. 주인공은 모든 소설에 용기의 일부를 반영한 인물을 등장시키고 반드시 그 인물을 죽인다. 지금껏 아홉 번이나. 딱히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특별히 생각나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냥 자기도 모르게 소설만 쓰면 그런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 재화는 세상의 남자를 딱 두 종류로 구분하는데,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남자와, 평생을 함께할 엄두는 나지 않지만 지구가 멸망한다면 마지막 하루를 함께하고 싶은 남자다. 재화에게 용기는 후자에 속한다. 한편 용기는 재화를 정말 이상했던 여친으로 기억한다.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고, 손을 잡아도 잡은 것 같지 않은 여친.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득문득 그녀의 '덧니'가 떠오른다. '안개 같은 얼굴을 뚫고 단단하게 올라오는, 보석 같은 덧니(p.50)'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인터넷에서 정세랑의 사진을 모조리 검색해 그녀에게 덧니가 있는지 찾아봤지만 실패했다.


둘 모두 헤어짐이 대단치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켠엔 빠지지 않은 조각 하나가 남아있었다는, 그래서 우리는 사실 다시 만날 운명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세상에 운명 같은 사랑 얘기가 많은 이유는 사실은 그런 게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달달한 게 땡길 때도 있고 먹는 게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단 걸 먹을 땐 언제나 이빨이 썩는 걸 조심해야 한다.


추신. 이런 혹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체로 정세랑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나는 '작가의 말'에 담긴 그녀의 생각을 존경한다.

'여전히 농담이 되고 싶습니다. 간절히 농담이 되고 싶습니다. 가벼움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무게를 가늠하며, 지치지 않고 쓰겠습니다.(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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