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와 같은 말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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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같은 말>이라는 제목으로 이 소설의 줄거리를 예상하기란 불가능하다. 임현의 소설들은 모두가 그렇다. 한국 문학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야기들. 이야기를 전복하려는 특이한 실험. 그래서 읽기가 어렵고, 읽어도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경우가 부지기 수다. 임현의 소설엔 도전이 필요하다.


그의 소설을 특징하는 단어들을 나열하자면 양자역학, 포스트모던, 다중 시점, 메타 소설, 현실과 소설의 뒤섞임,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의 위협이다. 이중 양자역학과 포스트모던, 다중 시점은 독해를 어렵게, 메타 소설, 현실과 소설의 뒤섞임은 서사에 흥미를 더하는,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의 위협은 그의 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임현의 소설은 이 세 가지의 삼위일체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단 하나의 인생을 경험하기에 '그때 그렇게 했다면' 하는 것은 상상으로 그치고 만다. 그러나 소설은 그 경우의 수들을 동시에 기술할 수 있다. 원자의 위치가 확률로만 분포하다 관측을 통해 하나의 위치로 확정되듯 우리의 선택으로 붕괴된 다른 사건들을 임현의 소설은 길어올린다. 그의 소설은 여러 시간과 시점이 혼재해 있어 이것이 누가 한 말인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인지 구별이 어렵다. 그래서 금방 피로해진다.


이 피로를 상쇄하는 것이 서사의 흥미다. 메타 소설이란 소설 쓰기에 대한 소설을 의미한다. 소설이란 결국 소설가가 여기저기서 듣고 경험한 것들에 이야기라는 가면을 씌워 만든 것이다. 훌륭한 소설은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건 바로 내 이야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것이 병적으로 발전하면 작가가 자신의 인생을 훔쳐보고 있다는 생각도 가능하다. 임현은 이 지점까지 이야기를 몰고 나간다. 그것은 소설 속의 소설가와 소설 속의 독자의 대결로 그려지지만 어느 순간 이 모든 이야기를 써낸 임현과 그것을 읽고 있는 우리 사이의 문제로 발전한다.


솔직히 말해 임현의 소설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그의 소설엔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물때처럼 묘한 불안이 서성인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을 타고 검은 불안이 피부 위로 옮겨간다. 이 불안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닦아낼 수가 없는데 애초에 그 불안의 원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은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나 결국 존재하지 않게 된 것들을 사실 옆에 은근슬쩍 끼워 넣어 진짜와 가짜를 마구 뒤섞는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외치지만 머릿속은 온통 코끼리로 가득해진다.


읽기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임현을 멀리하는 게 좋다. 그러나 나는 임현의 가장 탁월한 점이 바로 이 불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왁!' 하는 요란함 없이도 사람을 쪼아내는 공포. 임현의 소설은 강바닥의 이끼처럼 착 가라앉는다.


그리고 음지에 사는 생물들은 이끼를 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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