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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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5년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해 수많은 시민을 죽인 '오움진리교' 테러 사건에 대한 인터뷰집이다. 전편이라고 볼 수 있는 <언더그라운드>에서 하루키가 초점을 맞춘 대상이 '피해자'였다면 이 책의 시선은 '가해자'에게 향해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이비 종교 따위에 빠진 멍청한 놈들, 싹 잡아 가두면 그만이지 무슨 관심이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의 선과 악은 생각보다 뚜렷하지 않다. 역사상 손꼽히는 악행들은 대부분 선한 의지에서 발현됐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위안부, 인체 실험, 민간인 대학살을 저지르면서도 '대동아공영권' 따위를 굳게 믿은 일본인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리라 믿는다. 우리나라라고 크게 다를 거 있는가? 대한민국의 군사 독재자들은 모두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일어섰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자신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이비 종교의 신자들을 어딘가 머리 한구석이 고장난 바보라고 간주하면 상황의 해결은 요원해진다. 오히려 그들은 하루하루를 생각 없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진지하고 섬세할 확률이 높다. 퇴근 후 맥주 한 캔과 함께하는 야구 중계, 스펙터클한 불륜의 수목드라마로는 세상에 넘쳐나는 부조리와 악행으로부터 눈을 돌리기에 충분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좀 더 진지한 세상, 자신을 괴롭히는 그 부조리에 대해 함께 논할 사람들을 찾게 된다. 괴로움을 토로해도 별난 사람 취급하지 않는 곳,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서로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곳. 사이비 종교는 신도들을 일방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하지 않는다. 교주의 바보 같은 언행이 눈과 귀에 들어와도 수십만의 신도들이 변함없이 강한 믿음을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그곳으로부터 이 세상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뭔가를 확실히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개 심신의 안정, 강력한 유대, 삶의 방향성 등이다.


그런 걸 얻기 위해 많은 재산과 삶을 갖다 바치는 게 정상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겐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건강을 얻기 위해 필라테스나 헬스, 고액의 PT를 받는 건 어떤가?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기 위해, 혹은 갑자기 찾아온 허무를 채우기 위해 수십만 원짜리 독서 클럽에 가입하는 건? 수백, 수천만 원도 아끼지 않는 덕질은 어떤가? 스타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종교를 초월한다.


단순 비교는 불가하다. 이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위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다. 자기계발, 자기만족의 영역을 종교와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 다시 한번 물을 수밖에 없다. 위법 행위가 없는 한 사이비 종교는 모두 옳은 것인가?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사이비 종교를 막을 이유도 없는 것인가? 피해의 기준은 뭘까? 적극적 포교? 그렇다면 독서 클럽에 가입하라고 권유하는 건 포교일까 아닐까? 필라테스가 정말 좋다며 할인권을 건네는 행위는 포교와 어떻게 다를까? 질문을 던질수록 많은 사이비 종교에 사이비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게 애매해진다. 오움진리교도 지하철 테러를 저지르기 전까진 당국의 주목을 받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요가 단체로 생각했고, 지금도 남아있는 신자들은 여전히 그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심지어 사린 가스 테러를 오움진리교가 벌인 일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왜냐하면 그들 주변엔 정말로, 그런 일을 저지를 리 없는 순수한(그들의 기준에 따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이고 올바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겐 끔찍한 살인 행위가 벌어졌음에도 여전히 그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신도들에게 몸서리를 친다. 하지만 그 정상인들에게 목사나 신부, 스님의 비위 사실을 알려주면 뭐라고 할까?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신을, 나쁜 말과 행동이 아닌 그 종교에 내포한 선한 교리를 믿는 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의 악행은 결국 죽은 뒤에 벌을 받을 거라고 말하며 현세의 자신은 계속해서 교회를, 성당을, 절을 다닐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쁜 종교 지도자가 있다고 해서 그 종교 자체가 악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면 회사에 비유해 보자. 상사가 싫다고 모두 회사를 관두는 건 아니다. 회사의 부조리를 인지했다고 모두 정의의 투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감내하고 그것을 상쇄시킬 것들을 여전히 그 환경 내에서 찾으려는 속성이 있다. 자기들끼리 모여 상사의 뒷담화를 하면서, 익명 게시판에 신랄한 비판을 하면서 말이다.


삼성 그룹에 다니는 사람에게 이건희같은 파렴치한 성매매자 밑에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냐고 물으면 정말 어이없어할 것이다. 그 회사의 전부가 이건희는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엔 그들이 피땀 흘려 일궈 놓은 성과들이 있다. 설령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 비리를 저질렀어도, 그들이 만든 128단 6세대 V낸드는 진실하다. 그 노력을 초개같이 내던지고 새 출발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인생 일부를 그렇게 쉽게 떼어낼 수 있단 말인가?


사이비 종교의 교인들도 하나같이 교주의 말에 세뇌된 로보트가 아니다. 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비판과 생각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가 만든 좋은 말씀과 교세 확장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요즘 들어 교주가 덜떨어진 행동을 자주 하지만 중요한 건 아니다. 이곳엔 이미 좋았던 시절에 쌓아놓은 좋은 말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벼룩이 있다고 집 전체를 태우진 않는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다시 나아가면 된다. 우리가 지금껏 그래 왔듯이.


다른 기회가 있었다면, 우리 사회가 그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정의로웠다면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사회 활동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현세는 끝이야. 이 세상은 희망이 없어.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의 타락은 멈추지 않아. 현실이 패배에 침몰된 순간 인간은 내세의 낙원을 꿈꾼다.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죽음 뒤에 찾아올 영생을 위해 기도한다.


나는 사이비 종교가 일부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 인간 세상의 보편적 사회 현상이라고 믿는다. 어떤 사회에 사이비 종교가 만연한다면, 그 사회가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제공하는데 완전히 실패했다는 의미다.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는 한 그들이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걸 뿌리 뽑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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