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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제목 그대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저자 벨 훅스는 페미니즘이 학문적 연구 대상이기 전에 실생활에 적용돼야 하는 실천적이고 정치적인 활동임을 명확히 한다. 페미니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이라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사람들이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최근에 나는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두 여성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은 새로 입사한 직장 동료 중에 페미니스트가 있음을 이야기하며 그 사실에 상당한 놀람과 우려의 반응을 보였다. 대화는 결국 '페미니스트든 뭐든 나한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괜찮다'는 말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뉘앙스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이 대화는 그녀들만큼이나 나에게도 큰 놀라움을 주었는데, 오늘날 '페미니스트'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걸까? 페미니스트란 도대체 뭐길래, 두 여성을 그토록 걱정하게 만들었을까?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벨 훅스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심지어 같은 여성에게조차 적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이라면 대다수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은 그보다 더 심할 것이 분명하다. 단순히 학문적 성취를 위해서라면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큰 문제가 될 건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세상을 실제로 바꾸기 위해서라면? 오해는 정제하고 의미는 정확하게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돼야 하는 것이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으로 정의한다. 성차별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선 이 단어가 '여자의 입'에서 나왔을 때 일군의 화난 여자들이 남자가 차지한 권력을 뺏기 위해 악다구니를 벌이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이러한 편견은 페미니스트를 '극단적 남성 혐오자'로 페미니즘을 '남자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여성의 반란'으로 쉽게 단정해 버린다.
하지만 저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라. 저기 어디에 '남자가 문제'라는 말이 들어 있는가? 벨 훅스가 문제로 꼽는 것은 '성차별주의'이지 '남자'가 아니다. 성차별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선 '남자로 태어나든 여자로 태어나든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받아들이게끔 사회화'(p.18)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여자도 남자만큼이나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p.18).
벨 훅스는 레즈비언 커플, 편모 가정을 예로 들어 성차별주의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며 많은 가정에선 오히려 여성에 의해 전파되고 공고화 한다는(가정 교육의 주체가 주로 어머니이기 때문에) 사실을 지적한다. 성차별주의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라면 레즈비언 커플 사이에선 오직 평화만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남자가 사라진 편모 가정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남보다 더 엄하게 길렀다'는 말을 자랑처럼 하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누가 나쁜 놈인지 정확하게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같은 주장은 다소 혼란스러울 것이다. 예상했겠지만 벨 훅스는 같은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녀에게 페미니즘은 단순한 여남의 대립 구도가 아니었다. 여자가 남자의 위치를 대신하고, 그 자리에 올라서지 못한 모두를 억압하고 차별한다면 그건 또 다른 성차별주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성공을 막는 유리 천장을 부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벨 훅스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동일한 일을 하는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도 단연코 '그렇다' 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벨 훅스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저임금으로 가사 노동을 전담하는 직업군이 탄생했으며, 이 직업의 종사자가 대부분 '여자' 라는 사실을 지적할 것이다. 여성이 양질의 대학 교육을 받은 중산층과(미국의 경우 주로 백인 여성)과 저임금의 허드레 일로 연명하는 빈민층으로 나뉜다면, 그리고 여자든 남자든 이 계급의 분화를 부정하고, 하위층을 억압하고 착취하여 이득을 얻으려 한다면, 벨 훅스는 그 주체가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그들 모두와 싸울 것이다.
벨 훅스가 원한건 여남의 평등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의 평등이었다. 그녀의 사상은 '내로남불'을 인정하지 않는 엄격함을 보였기에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사람들한테까지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페미니즘엔 동류의 주장들을 초월하는 숭고함이 있다.
누군가는 극단주의가 판을 치는 요즘 세상에서 이런 생각이 먹히겠냐고 지적할 수도 있다. 동감한다. 사람들을 뜨겁게 달구려면 명확한 '적'이 있어야 하고, 그 적을 쓰러뜨려 전리품을 나눠가지는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숭고한 대의만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 그랬다면 이 세상은 진작에 좋아지지 않았을까? 고민은 깊은데, 마무리할 문장은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