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
피터 케리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는 호주 개척 시대의 아일랜드인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네드 켈리, 그리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 이들은 당시 '켈리 갱'으로 불렸지만 알 카포네 같은 마피아를 연상해선 안된다. 이들은 평범한 소몰이꾼 혹은 농부에 불과했지만 몇몇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갱으로 '만들어'진다. 두목 네드 켈리는 자기 없이 자랄 딸을 위해 이야기를 남겼고 그 이야기는 배신자의 손에 넘어가 역사가 된다. 얄궂은 일이지만,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을 관통하는 두 산맥은 호주라는 미지의 대자연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범죄자는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하는 질문이다. 우선 첫 번째 산맥을 타고 올라보자.


초기 호주 정착민들은 거대한 오세아니아 대륙에서 가능성과 무력함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압도적 공백이 전하는 무력함. 억척스러움은 그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내고 울타리를 치고 집을 짓고 마을로 가는 길을 만들고. 이렇게 쟁취한 것들을 누군가가 뺏으려 한다면 잠자코 앉아 대화를 나누기 보단 산탄총을 꺼내 대답을 날리는 게 더 효율적인 법이다. '주둥이 닥치고 내 땅에서 나가. 이 빌이 먹을 xx야.'


네드 켈리의 어머니는 남편을 두 번이나 바꿔가며 끊임없이 자식을 낳는다. 그녀에게 남자는 자신의 제국을 만들고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이런 계획이 한 번도 제대로 돌아간 적은 없다. 감옥에서 돌아온 남편은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나고 새로 만난 남자는 헛된 망상에 빠져 가족을 가난의 구렁텅이에 처넣는다. 또 다른 남자는 쓸 일도 없는 주제에 바람을 피운다. 어머니는 바람을 핀 남편에게 샷건을 쏘지만 나쁜 놈은 유유히 도망쳐 나간다. 엄마는 목이 잘린 말 위에 앉아 마른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 가족의 가장 큰 적은 언제나 권력이었다. 정부는 이상한 법으로 갈고닦은 땅을 뺏으려 하고 부패한 경찰은 자신의 무능을 숨기기 위해 무고한 자를 감옥에 처넣는다. 지금이나 그때나 공권력은 가난한 자의 친구라기 보단 부자들의 집을 지키는 개새끼 쪽에 가까웠다.


켈리 가족의 몰락은 피츠 페트릭이라는 경찰과의 악연에서 시작한다. 그는 네드 켈리의 여동생 중 하나와 결혼을 하길 원하지만 그에겐 이미 여자가 있었다. 이 빌어먹을 생각을 어떤 어머니가 허락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네드 켈리의 엄마라면? 피츠 페트릭은 네드 켈리의 여동생을 강제로 끌어 안아 무릎에 앉힌 뒤 허리춤에 찬 콜트 권총에 손을 댄다. 네드 켈리가 말한다. '무슨 개수작이야?'. 네드의 엄마가 삽으로 머리를 후려치자 권총을 뽑아 든 경찰의 손목을 네드 켈리가 쏘아 맞춘다. 경찰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다. 그는 켈리 가족의 용서로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는 모든 경찰력을 동원해 일가족을 쫓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범죄자는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낭만이라고는 단 한 톨도 섞이지 않은 이 소설에서 재미를 느낀다면 머리가 좀 이상한 걸까? 하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욕설과 문법을 어긴 문장은 이야기에 이상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얼핏 코맥 매카시의 국경 삼부작이 떠오르지만 켈리 갱에게서는 상처를 숙명처럼 받아들여 속에 새기는 매카시의 캐릭터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저항이 느껴진다. 매카시의 캐릭터가 침묵을 남기는 장소에서 켈리 갱은 '씨 x'이라고 말한다. 매카시라는 에스프레소에 위트를 두 스푼 넣은 뒤 마르케스라는(백년 동안의 고독) 찻잔에 받쳐 나온 것 같달까? 신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생생한 날숨을 내뿜는다. 두꺼운 밧줄이 목에 걸리는 장면을 목격하는 그 순간에서조차 어쩐지 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우리가 현대 호주의 모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태어난 모두를 범죄자로 만들었던 끔찍한 대륙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가 됐다(인종차별이 심하긴 하지만). 네드 켈리의 가족은 오늘의 진보가 결국 과거에 쏟은 피의 축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켈리 갱의 투쟁은, 결국 승리한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들핑거 2020-04-02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쩜, 온갖 예쁜 깃털들을 주어 치장하고 장식한 갈까마귀 같은 글들이네요.

한깨짱 2020-04-02 12:38   좋아요 0 | URL
까악~ 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