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 (1, 2권 합본 리커버 에디션) -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곰탕을 끓이기 위해 미래에서 온 남자가 있다. 이름은 이우환. 고아였고, 부모의 존재는 전혀 모른다. 성년이 되어 고아원을 떠나올 때 원장이 딱 두 개의 이름만을 알려줬다. 이순희, 유강희. 우환의 부모였다.


이우환은 성인이 된 직후부터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까지 한 식당의 주방 보조를 했다. 배경은 2060년쯤의 부산이다. 세상은 대규모 해일로 초토화 되었고 부자들은 살기 위해 높은 곳으로 이사 갔다. 가난한 사람들만이 바닷물이 빠진 소금 땅 위에 집을 짓고 산다. 해일은 두 번, 세 번 살만해지면 다시 돌아왔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모든 걸 잃었다. 그리고 소금 땅 위에 다시 집을 지었다.


가축은 사라진지 오래라 미래엔 쥐의 유전자를 조작한 괴물을 먹고 산다. 그걸로 곰탕 비슷한 걸 끓여 팔지만 아무리 해도 예전의 그 맛이 나지는 않는다. 우환의 가게 주인은 한때 부산에서 가장 유명했던 곰탕집의 국물 맛을 떠올린다. 죽기 전에 그걸 한 번 재현해 보고 싶다. 주인이 아련한 옛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긴다. 어느 순간 우한의 모습이 그 추억과 겹쳐진다.


잦은 해일 이후 바닷물은 저 멀리까지 빠진 상태였고 그 한가운데에 정체불명의 씽크홀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걸 블루홀이라 불렀는데, 누가, 언제부터 그 구멍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통로라는 걸 알아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사실이 알려지자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 힘 있는 자들의 부탁을 받아 과거로 향하기 시작한다. 주인은 우환에게 곰탕을 끓이는 법을 배운 뒤 재료를 사 가지고 돌아오면 식당 하나를 내 주기로 약속한다. 시간 여행에는 엄청난 위험이 따른다. 살아 돌아오는 사람이 반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환은 주인의 부탁을 받아들인다. 그는 이렇게 살다 죽나 거기로 가다 죽나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도착한 과거에서 시간이 꿈틀거린다. 주방 보조에 불과했던 이우환에게 미래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사건들이 차례로 도착한다. 그 중에는 이순희, 유강희와의 만남도 포함되어 있다. 우환은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진지도 모른 채 두 사람의 사랑을 막으려 한다. 그 사랑의 결과가 고아 이우환이라는 불행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린 부모의 삶에 엉켜버린 나이 든 자식의 시간. 끈질기게 방해를 해보지만 세상 일은 과거나 미래나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철든 자식은 매일 새벽 어린 부모에게 곰탕을 내놓는다. 그들이 국밥 한 그릇을 맛있게 비우는 걸 바라본다. 우환의 마음에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몰려온다. 철없는 두 아이들은 우환의 젊은 부모, 그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곰탕 수업은 끝났고 아롱사태와 양지머리도 구해놨다. 이제 다시 가족 하나 남지 않은 미래로 돌아갈 시간이다. 우환의 흔들리는 마음이 새로운 톱니바퀴를 돌린다. 세 사람의 시간은 대격변을 향해 나아간다.


<곰탕>은 시간 여행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지만 풀어내는 방식은 범상을 넘어선다. 제목답게 한국적인 맛을 추가해, 볼품없고 작은 개인이 거대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50년 전통의 원조 곰탕집처럼 푹 삶아 고아낸다. 별거 아닌 이야기에 깊은 맛을 추가했다. 읽는 내내 '새롭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카카오 페이지에서 연재한 탓인지 기승전결이 1회분에 맞춰 움직일뿐 큰 이야기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답답함은 단점이다.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소설은 곁가지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한데 꼬아 거대한 줄거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2부가 넘어가는 시점부턴 확실히 이야기에 속도가 붙는다. 지루함이 느껴질 때면 이 말을 기억하며 인내하기 바란다. 실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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