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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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은 삶의 잔인함과 인간의 비열함을 가장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작가다. 그런데도 표현은 은은하고 절제되어 있다. 바로 이 점이 김애란의 소설을 현실과 절묘하게 포개어 주는 묘수인데, 나는 그녀의 소설보다 더 정확하게, 삶의 민낯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본 적이 없다.


<바깥은 여름>은 단편선이고 7개의 소설이 담겨 있다. <침묵의 미래>를 제외하면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보물이다. 그런데 그건 <침묵의 미래>가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다른 소설들과 확연히 다른 결을 지녔기 때문이다. 마치 탁란을 해놓은 뻐꾸기 알같이, <침묵의 미래>는 같이 선 소설 중에 가장 과잉되어 있다. 차분히 가라앉은 말투 속에 배어 나오는 심리의 절묘함은 확실히 다른 소설들에서 두드러지고, 그것이 김애란을 여타 작가와 구별해주는 징표가 아닐까 싶다.


그녀의 소설은 언뜻 보면 모두 지루하다. 우리가 익숙히 경험하는 현실을 너무 리얼하게 구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보던 풍경에선 뭔가 특별한 것이 발견되지 않는 법 아닌가. 그러나 인물들의 발걸음을 차분히 관조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이 내려앉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김애란의 소설은 마지막 한 페이지를 위해 전체를 인내하는 소설이다. 한 여름을 버틴 얼음이 겨울에 와서 녹는 기분. 두 번, 세 번 같은 페이지를 연달아 읽을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뜨겁게 즐기기 위해 독자는 인내를 배워야 한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었고 거기서 대상을 받은 것이 바로 <침묵의 미래>였다. 그래서 나에겐 어떤 편견이 깃들었었나 보다. 혹시 나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김애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줬으면 한다. 우리 같은 사람이 읽지 않는다고 잊힐 소설가는 아니지만, 이런 작가는 더 많은 사람이 만나볼 가치가 있다.


장편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김애란은 단편이 더 어울리는 작가 같다. 마지막 한 페이지를 위해 책 한 권을 인내하는 건 조금 심하지 않은가? 물론 <파이 이야기> 같은 소설도 있기는 하지만. 혹시 이것도 또 하나의 편견일지 모른다. 그 편견을 깨기 위해 다음엔 그녀의 장편을, 아니 김애란의 모든 소설을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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