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9
김성중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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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는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와 같은 소재를 공유한다. 두 소설 모두 '죽음이 죽은' 세상을 그린다.


어떤 존재의 이유를 가장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 부재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인간은 오랜 시간 죽음을 질병처럼 여겨왔다. 많은 권력자와 야심가들은 죽음을 치료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죽음의 사망 소식이 선물처럼 나타난다. 시간은 멈췄고 사람들은 같은 나이를 반복하며 100년을 보낸다. <이슬라>는 '백년 동안의 열다섯' 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그러나 죽음이 사망한 세계는 결코 축복이 아니었다. 이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하는 일, 죽기 전에 반드시 이뤄야 하는 일 같은 것에 어떠한 욕망도 느끼지 못했다. 죽음의 자리를 대체한 건 허무였다. 인간에게 죽음은 질병이 아니라 치료제였던 것이다.


<이슬라>는 우리에게 죽음이 왜 필요한지를 똑똑히 가르쳐준다. 오랜 시간 죽음을 긍정해왔던 내게 이 발상의 전환은 반갑고 즐겁다. 나는 죽음의 존재를 또렷히 느끼기 때문에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길 수 있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죽음과 거리를 좁혀간다. 어느날 우리가 만나는 날 내 인생은 '끝'이 아니라 '완료'된다. 죽음에 대한 이 감각은 온갖 소음과 어지러움이 난무하는 내 일상에 유일한 안식처가 됐다. 나는 어렵고 힘든 일을 맞을 때마다 죽음을 바라본다. 그러고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죽음에 비하면 모든 일이 사소하고 하찮게 보이기 때문이다.


김성중을 처음 만난 건 <국경시장>이었고 한국에도 이런 소설가가 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머리 속으로 반짝이는 상상력들이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소재의 광채는 그 자체로 이야기를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전작에 비하면 <이슬라>는 그렇게 강력한 소설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주제 사라마구를 통해 죽음이 중지한 세계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라마구의 소설에 익살을 빼고 서정과 신화적 요소를 더하면 대략 <이슬라>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다. 자신의 역할을 망각한 죽음의 신이 열다섯에 시간이 멈춘 소년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그것은 내게 낯익은 미래와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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