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
윤성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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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간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린 시절, 나는 네 번이나 죽을 뻔했다.'(p.9) 고 시작한다. 이 담담한 문장은 결코 무용담이 아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떠한 흥미도 드라마도 끌어내지 못한다. 그는 알맹이가 쏙 빠진 조개껍데기를 늘어 놓듯 무심히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엄마의 뱃속에 있는 동안 밀린 월급을 받으러 갔다가 공장 옥상에서 투신 자살을 했다. 엄마는 평생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았고, 곧 재혼했다. 그에게는 누나와 두 형이 생겼지만 그들은 그를 자전거에 태워주지 않았다. 걸어서 40분이나 가야하는 학교를 혼자서 걸었다. 처음 죽음을 만난 곳이 바로 그 길에 놓인 다리 위였다.


다리 위에 가지런히 운동화를 벗어놨기 때문에 '자살'이란 소문이 돌았지만 그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단지 다리 위에 앉아 발을 흔들며 놀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하지만 데려온 자식이란 사실은 여러 정황들과 융합해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냈다.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그를 혹이라고 부른다는 얘기가, 둘째 형이 학교 운동장에서 그를 밀치며 형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 말이. 동네 노인들은 그의 얼굴이 아이답지 않게 음침하다고도 했다. 새 아버지는 사건 이후 그의 손을 잡고 동사무소로 간다. 성을 바꾸려 했지만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그는 도장집으로 가 자신의 성을 붙인 도장 두 개를 파준다. 그는 이 '오해를 방패삼아 사춘기 시절을 통과했다(p.10).'


그는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해서 딸을 낳았다. 그리고 그녀는 열일곱살이 되던 해 죽음을 맞는다. 대화가 사라진 부부는 이혼을 했다. 이후 그는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다.


인생 깊숙이 묻어놨던 죽음의 씨앗이 다시 발아를 시작한다. 그는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원주에 갔다 그 길로 전국 유랑에 나선다. 정해진 목적지도, 이유도 없이 터미널 노숙과 모텔을 전전하며 전국을 떠돈다. 뭔가가 쫓아와 집어 삼키기라도 한다는 듯, 그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재직 시절 회장의 자서전을 쓴 적이 있다. 그 경험을 살려 딸의 자서전을 쓴다면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지 고민한다. 처음에 3인칭이었던 문장은 어느 순간 1인칭으로 변한다. 그는 자서전 속의 나(딸)가 되어 딸을 느낀다.


하지만 그 '나'는 정말로 딸을 의미할까? 그는 자신의 이야기로 이 소설을 시작했지만 그건 핵심이 빠진듯한, 귓 속에 들어오지만 이내 흘러가 버리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속마음은 내비치지 않았고, 울지도 웃지도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쓸데없는 얘기를 늘어 놨다. 그는 '나'가 되어 자서전을 써보지만 좀처럼 이야기는 흐르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아직도 진짜 '나'의 이야기를 꺼내들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같은 로터리를 빙빙 돌며 해야할 말을 찾는다. 로터리는 오거리였다. '그 말은 빠져나갈 길이 다섯개란 뜻이었다(p.135).' 그러나 그 길은 그가 자신의 어둠을 직시하지 않는 이상, 그가 진짜 자기 얘기를 할 준비가 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다.


<첫 문장>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모를 정도로 겉도는 소설이다. 뚜렷한 줄거리도 없고, 마음을 끄는 문장도 없다. 그러나 남자의 속내를 곰곰히 헤아리다보면 이 알맹이 없이 겉도는 얘기가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형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이야기의 이유를 설명하고 싶은 욕구를 참고 또 참아야 했을 것이다. 윤성희는 끝까지 시치미를 뗀채 마지막 문장을 적어 넣는다. 그 인내심이 존경스럽고, 또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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