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순이 : 식모, 버스안내양, 여공 - 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
정찬일 지음 / 책과함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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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권익을 위한 투쟁의 역사는 길고도 참혹했다. 그들은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이름조차 없는 존재였다. 일제가 수탈을 위해 민적법을 제정했고, 여성의 등록을 강제한 탓에 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이름을 얻게 된다. 하지만 주어진 이름은 무성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형편없는 것들이었다. 딸이라 실망해서 '섭섭', 갓 낳은 아이라 '간난', 어린년이라 '언년'. 근대화 이후에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딸의 이름으로 가장 선호하는 글자는 '순할 순'으로 여자는 모름지기 순해야 한다는 전근대적 발상을 계승했다. 이 '순이'는 이후 직업에 따라 '식순이(식모)', '차순이(버스 차장)', '공순이(여공)', '빠순이(술집 종업원)'로 세분화 된다.


최근들어 불길이 거세지는 양성평등 논란이 의아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엄마나 할머니는 아무 소리 없이 잘 살았는데 왜 유난이야? 라며 황당해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이미 남녀는 완전한 평등을 이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여성의 투쟁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 싸움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차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특혜를 입고 살았거나 그저 암탉이 우는 게 기분이 나쁜, 이 시대에 화석으로 굳어가는 가부장들일 것이다.


이 책은 여성의 직업을 크게 식모, 버스 차장, 공순이로 나눠 그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과 투쟁의 역사를 조명한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공순이' 시절인데, 노동집약적 경공업을 우선 육성 대상으로 지정한 경제 정책 탓에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이를 거의 여성이 메웠기 때문이다. 이들의 저임금 고강도 노동은 우리 나라 경제 발전에 실제로 상당한 기여를 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부터 '새마음운동'이라는 걸 시작했는데, 이는 여공들에게 유교적 희생정신을 강요하는 정신개조 운동이었다(이를 담당한 구국여성봉사단 단장이 박근혜다). 이는 여성의 희생이 나라 경제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는지, 그게 얼마나 필요한지 국가가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쉽게 말해 여성들은 자신의 노력에 걸맞는 권리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했다. 특히 노동 운동과 민주화에 기여한 여성의 역할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눈물없이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정치권, 노동조합들이 여성 권익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건 가히 배은망덕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손꼽히는 강성 노조로 유명한 현대자동차조차 IMF 시절 정직원이던 사내 식당 여성 근로자를 전원 해고하는 것으로 구조조정에 대한 노사 합의를 이룬 적이 있다).


<삼순이>이 최대 강점은 당시 여성들이 겪었던 고초를 인터뷰, 신문 기사, 대중 문화, 사진 등으로 생생하게 고증한다는 점이다. 특히 당시의 신문 기사를 읽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를 두 개나 가진 나라가 고작 30년 전만해도 갓 상경한 여자들을 유괴해 여기저기 팔아넘기는 게 아주 흔했다는 걸 알고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 분량이 식모와 차장에 많이 할애되어 있는 건 많이 아쉽다. 본격적 투쟁이라 볼 수 있는 공순이의 시대는 유성처럼 번쩍하고 사라진다. 사실 이는 빠르게 중공업으로 전환한 한국 경제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중공업이 주력이 되면서 경공업이 몰려 있던 구로공단은 쇠퇴를 맞이한다. 그곳에서 삶을 쥐어짜던 여공들의 목소리도, 이제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미미한 잔향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성이 다시 산업의 주역으로 올라서기까지는 공백이 존재했다. 어쩌면 이 공백이 오늘날 벌어지는 논란에 당혹감을 느끼는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성의 목소리는 한번도 멈췄던 적이 없다. 그들은 아무도 자기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서도 성실히 노력하고, 꾸준히 투쟁하여 현재의 위치를 쌓아올렸다. 여성이 임원이 되고, 여성이 CEO가 되고,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에 왜 아직도 차별 타령이냐, 고 따지는 사람들은 이 시대가 이미 진작에 평등을 이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활약은 평등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이는 그들이, 드디어 말할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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