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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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궐하는 혐오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전세계는 혐오로 인한 폭력과 분열로 고통을 겪고 있다. 혐오의 가장 무서운 점은 피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혐오에 질린 사람들은 썩어가는 문제점을 두 손을 꺼내 깨끗히 정리하기 보다는 두꺼운 뚜껑으로 덮어 눈을 가리려 한다. 혐오는, 그 피해자가 나 자신이 되기까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 책에 추천사를 쓴 <88만원 세대>의 저자 박권일은 혐오가 '사회문제의 기원이나 원인이 아니라, 발현이며 결과다.'(p.12) 라고 썼다.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뭔가가 이미 존재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것이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혐오는 한 집단의 정체성이 다른 집단의 믿음, 생활, 신념에 침범당할 때 발생한다. 마치 육체가 질병과 싸우듯 다수의 정체성은 소수를 쫓아내거나 짓밟아 버린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 의견, 정치, 종교, 인종, 성적 취향의 다양성은 우리 사회의 건강을 위협하는 병균이 된다. 그것과 접촉하면 나와 내 자식, 우리 가족이 감염될 것이라는 공포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p.144 참조).


그러나 정체성이란 과연 언제, 어디서부터 형성된 걸까? 지금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한국인, 우리가 표준이라 믿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확립된 건 조선일까? 고려일까? 아니면 단군 할아버지의 고조선일까? 정체성을 국가의 존망과 결부시킨다면 우리는 이미 조선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대한민국 시민의 삶을 받아들인게 된다. 조선의 정체성은 우리가 극복한 질병에 불과한 것이다.


정체성을 민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데 훨씬 수월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우리민족을 대한민국 시민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에게 대한민국 여권을 발급하고,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제공하고 이국 땅에서 차별을 받는 그들을 위해 정부는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야 할까? 민족의 자긍심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을 위한 지원에 발을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단언컨대 불변하는 정체성이란 개념은 신화에 불과하다. 정체성은 지난 역사를 계승해 현재를 수용한 뒤 미래로 나아간다. 반만년 배달민족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화해 온 것이다. 혐오를 입에 담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극히 사적인 취향에 따라 선택한뒤 그것을 근거로 혐오를 정당화 한다. 여성 권익의 증가를 역차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가부장적 사회제도와 남성 우위의 유교 사상을 대한민국의 보편적 정체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들에게 고려의 얘기를 들려주면 어떨까? 고려 사회에서 여성의 신분은 남성과 동등하거나 때로는 더 우위에 섰다. 자식들은 아버지냐 어머니냐를 따지지 않고 둘 중 더 훌륭한 가문을 자신의 선대 계보로 여겼다. 그들의 눈에 고려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혐오의 뿌리를 강도 높게 파헤쳐나가는 학술서는 아니다. 사실 저자는 혐오를 일삼는 일군의 집단을 놀란 모습으로 바라볼 뿐 명확한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저 우리와 똑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일 뿐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책이 그저 단편적 사건에 대한 저자의 컬럼 혹은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혐오의 뿌리를 역사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간혹 귀를 기울일만한 통찰이 번개처럼 스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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