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도서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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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와 카트 멘시크의 조합은 <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던 하루키의 불안이 절묘하게 스며든 이 책은 멘시크의 기괴한 일러스트레이션과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그 어떤 공포 소설 보다도 무서웠던, 하루키의 소설 전체를 놓고봐도 참으로 이례적인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은 <버스데이 걸>이다(이는 출간 순서가 아닌 내가 이 시리즈를 접한 순서다). <잠>과는 달리 이 책은 하루키 소설의 전형을 담고 있다. 정체불명의 노인, 젊은 여자, 기이한 체험. 성인이 된다는 것, 특정한 공간, 특정한 시간에 선택한 뭔가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 스무살이라는 상징적 나이가 미스테리와 어울리며 독특한 분위기를 냈던 소설이다. 여기서도 카트 멘시크의 그림은 여자가 겪어야 했던 낯선 사건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했다.


그리고 <이상한 도서관>이다. 출간 시기는 <잠>과 <버스데이 걸>의 사이(한국 출간 기준)지만 이야기의 결은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하루키의 모든 작품들이 체계없이 용융된 느낌이랄까? 사건은 그야말로 괴괴하다. 우연히 책을 빌리러 갔던 남자가 시립도서관 지하에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되는 이야기인데,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양을 쫓는 모험> 그 밖에 판타지가 섞인 어떤 소설보다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하루키의 소설엔 믿을 수 없는 환상이 현실에 버티고 있다거나 샌더스 대령(KFC 할아버지) 같은 엉뚱한 인물이 주요한 매개체로 등장하고, 주인공들이 그 낯선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특징이 있지만 적어도 그들의 모험 자체에는 나름의 이유가 명확히 존재했다. 그들은 기괴하게 변한 현실의 늪을 빠져나가 원래의 자기 것을 구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그것이 자아든, 기억이든, 문자 그대로 세상 그 자체였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도서관>의 주인공은 감옥에 갇혀 우는 게 전부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견뎌낼 자신도 없으면서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답답한 태도를 취한다. 소설은 괴괴의 총집합을 작정이라도 한 듯 온갖 괴물들을 쏟아내지만 거기서 어떤 메타포를 읽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주인공이 처한 혼란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성공이다. 하지만 나는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페이지와 페이지의 사이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


<이상한 도서관>은 진짜로 이상하다. 이상한 걸로 따지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하루키의 작품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이상함'을 자랑한다. 그로테스크를 좋아한다면 한번 도전해 보길 바란다. 소설은 75페이지 밖에 안 된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당신은 양사나이의 손을 잡고 뇌를 빨아먹는 노인의 감옥에서 탈출해야 한다. 돕는 건 소녀와 찌르레기다. 그 앞을 여섯개의 발톱이 난 검은 개가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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