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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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을 왜 읽는지 알겠다. 기름기를 쫙 뺀 돼지고기처럼 절제된 감정과 취재에 기반한 사실이 돋보인다. 소설이 아니라 취재기라 부르는 게 맞을 수도 있지만 둘 사이의 균형이 미묘하게 맞춰진다. 무겁되 너무 무겁지 않고, 가볍되 너무 가볍지 않다. 읽는 재미가 충분한 소설이다.


<허삼관매혈기>를 쓴 위화의 말이었던가? 그는 인민의 적은 인민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인민의 삶을 핍박하는 건 저 위의 권력이 아니라 옆 집에 사는 또 다른 인민이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지만 우리의 실생활을 돌아보면 이보다 뼈져리게 느껴지는 말이 없다. 예를 들어보자. 식당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은 누구에게 따져 묻는가? 종업원이다. 새로 산 휴대폰이 자주 고장나 AS를 받으러 가면 당신은 누구에게 화를 내는가? 수리기사다. 택배가 늦으면? 분리수거장 청소가 잘 안 되어 있으면?


식당의 서비스가 엉망인건 주인이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으로 종업원들을 혹사시켰기 때문일 수 있다. 택배가 늦는 건 엉터리 같은 물류시스템과 비용을 짜내려는 관리자들의 판단 때문일 수 있다. 휴대폰이 자주 고장난다면? 그 잘못은 애초에 그런 휴대폰을 만든 연구원들과 그걸 출시하기로 마음 먹은 경영진들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상 뒤에 숨은 원인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분노는 늘 우리와 얼굴을 맞댄 사람들에게 향한다. 그것은 때때로 죽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불타는 공장에서 숨이 막혀 죽는 건 파업 노조와 이간질에 동원된 사측 임직원이다. 건설사의 욕심으로 편의 시설이 부족한 아파트단지에서 주차 시비가 붙어 옆집 사람이 앞집 사람을 살해한다. 삶은 약자들끼리 벌이는 전쟁이다. 실제 전범들은 통유리로 된 박스석에 앉아 레어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신다. 난장판이 된 세상을 내려다보며, 왜들 저렇게 서로 싸우냐고, 교양이 없다고 혀를 차면서.


<산 자들>에서 서로의 멱살을 움켜쥐고 밥그릇 다툼을 하는 것도 평범한 약자들이다. 장강명은 이 소설을 통해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건 연대다' 라거나 '관점을 전환하라' 혹은 '고개를 들어 진짜 적을 봐라' 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소설을 그저 짜증나는 삶에 대한 짜증나는 일기로 받아들일까봐 겁이 난다.


소설가는 손가락을 들어 정확히, 자기가 말하고 싶은 걸 가리킬 수 없다. 그건 소설이 아니라 논설이다. 기사를 쓰던 장강명이 소설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손가락을 들어 말하고 싶은 걸 바로 가리키는데도 바뀌지 않는 세상에 신물이 났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소설을 고르다니, 이 죽어가는 매체를, 오해로 점철될 수 밖에 없는 모호한 도구를.


그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이 소설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소설 쓰기를 선택했고 나는 그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복잡한 세상에 터럭 한 톨 만큼의 균열도 내지 못하는 행동들.


사실을 마주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좋은 소설을 읽어 기분이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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