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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 -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읽다보면 참담함을 느끼는 책이 있다. 시장은 결국 제품의 질과 무관하다는 생각을 들게하는 책들. 이런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될까? 내 마음과 눈은 도대체 얼마나 뒤틀려있길래 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책이 참담하게 느껴지는 걸까? 차라리 눈이 멀고 귀가 닫혀 있었다면...
나같이 골방에 앉아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토록 엉망인 책을 비판하는데도 오해와 비난을 뒤집어 쓸 각오를 해야 한다. 100만부나 책을 판 작가가 아무렴 너보다도 글을 모를까?(물론 100만부 판매는 말의 품격이 아니라 <언어의 온도>다) 그렇게 잘났으면 너도 직접 써봐라. 어떤 사람은 권위자의 반대 주장을 댓글로 남기기도 한다. 내가 '틀렸다'는 것이다. 그럴때면 인간의 이성 능력에 대해 심각한 회의가 든다.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일까?
<말의 품격>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0점 이상을 주기 힘든 책이다. 우선 문장. 읽어보면 생동감이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답답함과 고루함이 느껴진다. 바로 감각할 수 있는 생어대신 개념화된 '한자어'로 도배를 해놓기 때문이다. '피'라는 단어를 '혈액'으로 고쳐쓰고 '똥'을 '생리현상'으로 바꿔보라. 문장의 힘은 현저히 약해진다. 이런 표현은 신문 기사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기자들은 글의 생생함이 자칫 객관성을 흐릴 수 있다는 공포감에 빠져있는 사람들이다. 생어는 글 속에 자신의 감정이 드러나지만 한자어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숨겨준다. 기사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에세이에는?
이러한 습관은 작가의 이력에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작가가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책에는 저 유명한 유교 성인들의 말씀이 가득하다. 마치 대중 계몽을 위해 국가가 편찬한 지침서같이, 무엇이 '품격'인지를 일일이 정해놓는다. 물론 자기 책이고 자기 생각이니 이것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다. 내가 따지고 싶은 건 이런 글이 어떻게 '팔릴 수 있는가' 이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가르침을 내려줄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두 번째. 책에 소개된 사연들이 전부 지어낸 이야기 같다. 작가가 실제 경험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본인이 가르치고 싶은 바를 전달하기 위해 가짜로 지어냈다는 느낌이다. 억지 감동과 억지 교훈. 사연을 읽고 있으면 어디선가 플라스틱 냄새가 진동을 한다. 공장에서 갓 뽑아온 공업용 사연들. 작가는 원래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니까 이런 비판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다. 내가 따지고 싶은 건 이런 글이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는가' 이다.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이런 사연에서도 정말로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있을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그들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그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글을 읽는 내내 작가가 80세를 넘긴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다. 문장과 내용이 모두 고루했는데, 사실 '고루' 라는 단어에 미안함이 들 정도였다. '고루' 가 이 책을 읽고나면 나에게 화를 낼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세상을 살아왔기에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고, 그건 그거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꽤 젊은 축에 속한 작가였다. 어떻게 이리 다른 세계를 살 수 있을까? 계속해서 말하지만 나는 작가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그런 생각이 요즘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가, 궁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