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텐 국가를 말하다 - 국가라면 꼭 해야 할 것, 절대 해서는 안 될 것!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라의눈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이중톈은 중국의 르네상스인으로 불리는 학자로 그 별명에서 알 수 있듯 다양한 분야에 통달한 지식인이다. 본업은 미학이지만 이름을 얻은 건 CCTV에서 진행했던 <삼국지 강의> 덕분이었다. 나는 방송이 아니라 책으로 접했는데 우리 세대가 공유하는 삼국지에 대한 열광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책이었다. 두꺼운 책 두 권을 눈깜짝할 새에 읽었던 기억이다.


이중톈 선생의 가장 큰 특징은 가독성이다. 아무리 어려운 개념이라도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엉켰던 실타래가 술술 풀리는 것처럼 시원하게 설명이 된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르다. 그 자신이 선언하듯 <국가를 말하다>는 학술서다. 한자어 특유의 모호한 뜻풀이가 반복되는가 하면 내용 자체가 친숙하지 않아 그것이 학계에 널리 통용되는 정의인지 아니면 이중톈 선생의 독자적 해석인지 구분할 길이 없다. 이러한 모호함 때문에 독자는 똑같은 말이 반복된다고 느낄 수도 있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처럼 지나치게 사변적인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다음은 '악'에 대한 선생의 설명이다.


악은 음악의 뜻이자 쾌락의 뜻이기도 하다.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악처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예로 상하의 질서를 정연하게 만들고 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화창하게 만든다(p. 189).


이는 서주 시대의 덕치 제도를 설명하면서 주공이 왜 '예악'을 덕치의 실행 방법으로 고안했는지를 말하는 대목이다. 얼핏보면 어려울 게 없는 문장이지만 하나하나 세세히 뜯어보면 모호한 구석이 많다. 우선 '악이 쾌락의 뜻' 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악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일까?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음악처럼 조화를 이뤄' 야 한다는 건 그렇다치고 '예로 상하의 질서를 정연' 하게 하는 걸 납득해도 '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화창하게 만든다' 는 건 뭘까? 딱딱한 위계질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악으로 치유해줘야 한다는 말일까? 다음은 이 단락의 결론으로 오묘한 동어반복의 미로에 빠지는 기분이 든다.


물론 여기서 중심이란 덕이고 두 개의 기본점은 예와 악이다. 예는 차이를 변별하고 악은 조화로운 통일을 추구한다. 예는 질서를 중시하고 악은 화해를 강조한다. 예와 악은 모두 덕치를 위한 것이다. 덕치가 근본이 되어 예악을 실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악 제도' 이다(p. 189).


<국가를 말하다>는 역사, 그 중에서도 제국의 제도에 집중한다. 시황제의 천하 통일 이후 수 많은 왕조가 중원 제패와 멸망을 반복하며 대륙의 주인으로 거쳐갔지만 '제도' 만큼은 큰 변화없이 이천년 넘게 중국을 지배해왔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선생은 2천년간 이어져온 제국의 제도에 '공화'는 없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공화'란 무엇인가? 왕이 없다는 것이며 국가의 주인인 백성에게 권력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륙에 공화의 전통이 없었기 때문에' 라는 말에 숨은 진짜 의미가 무엇일까? 힌트를 주자면 중국 당국이 이 책의 출판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공화의 전통을 가진 나라는 전 세계의 역사를 통털어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시민 혁명이 일어난 프랑스에는 공화의 전통이 있었는가? 영국은? 독일은? 비슷한 제도를 공유했던 한국은 어땠을까? 대한민국은 이중톈 선생이 중화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소국이라 칭할만한 나라지만 공화의 전통없이도 그 장점을 발견하고 수많은 사람이 피땀을 흘려 제도로 확립한 나라다. 12억 인민도 못해낸 일을 그 10분의 1도 안된 시민들이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선생의 진의를 확인하고나서야 올바른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공화의 전통이 없다' 라는 선생의 말은 사실상 전제국가로 나아가는 자국의 상황을 변명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국가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에둘러 표현한 풍자일까? 나는 어느정도 판단이 섰지만 독자들을 위해 그 답은 보류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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