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반물질 :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질 이야기 (체험판)
프랭크 클로우스 지음, 강석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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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물질을 처음 접한 건 만화 <암즈>에서였다. 주인공이 변신하는 '자바워크'라는 괴물이 이 반물질을 무기로 사용하는데, 보고 있는 소년의 마음이 두근두근할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했다.


반물질은 어떤 특정한 물질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들의 또 다른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수소가 있으면 반수소가 있고 알루미늄이 있으면 반알루미늄이 있다. 물질과 반물질은 그 내부를 구성하는 원자핵이 다를 뿐 쌍이되는 녀석들끼리 완전히 동일한 성질을 지닌다. 따라서 홍합탕을 끓이고 간을 맞추기 위해선 소금을 넣든 반소금을 넣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반소금을 섭취했을 때 우리의 몸이 원자폭탄처럼 폭발하며 밥상과, 집과, 나아가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 전체를 우주 먼지로 만들어버린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반소금 5g이면 대략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10배에 해당한다.


이게 바로 반물질이 각종 SF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유다. 반물질은 초고효율 에너지원으로 만약 인류가 효율적으로 통제하게 된다면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무기를 가져 뭐하냐고? 폭발은 무기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피스톤은 흡입-압축-'폭발'-배기의 4사이클 공정을 반복하며 자동차를 앞으로 밀어낸다. 우주를 누비는 스타트랙의 엔터프라이즈호가 바로 이 반물질을 우주선의 연료로 사용한다.


우주 어딘가엔 반물질들로만 이뤄진 지구나 인간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들은 우리와 완벽히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반갑게 악수를 나누는 순간 우주 대재앙이 벌어질 것이다. 반가워 친구 나는, 펑! 사랑하지만 떠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 영 헛소리로만 들리는 사람이라면 반물질 여자나 남자를 만나 연애 감정을 키워보는 것을 추천한다.


과거에는 죽었다 깨나도 알 수 없었던 우주의 신비가 과학적 사실로 드러날수록 나는 오히려 이 세상을 만든 '누군가'의 존재를 느끼곤 한다. 언젠가는 이 우주에 반물질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밝혀지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도대체 이놈들이 왜 우주에 남아있는지를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반물질이 어쩌면 우주를 창조한 누군가의 리셋 버튼이 아닐까 하는 상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우리의 우주 옆에는 완전히 동일한 질량을 가진 반우주가 존재한다. 양 끝엔 각각 물질과 반물질 유리벽이 세워져 있고 그 사이는 진공이다. 일종의 어린이 과학도구 같은 모습인데, 한참을 가지고 놀던(한 130억년 정도?) '그 존재'가 '에잇, 이번 우주도 글렀어!' 하며 유리 벽을 제거해 두 우주를 충돌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마치 Ctrl + N을 누른 것처럼 새 캔버스가 나타나는거지. 일일이 부수고 치우고 하기엔 먼지도 날리고 어지간히 손이 가는 일이니까. 어쩌면 이 우주의 끝에는 일종의 버전 정보 같은 게 적혀있을지도 모른다.


반물질로 시작해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렸지만 이게 또 과학책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우주는 너무 광활해서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책으로 돌아와 중요한 얘기를 몇가지 하자면, <반물질>은 그렇게 친절한 책이 아니다. SF적 지적호기심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설명이 하드코어하다. 흥미진진한 우주 이야기가 친절한 단어와 방법으로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간 5페이지도 가지 못하고 던져버릴 것이다. 다행인건 번역이 꽤 괜찮다. 이 말은 다소 어폐가 느껴질 수도 있는데, 문장이 뚝뚝 끊어지며 흐름을 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전문 서적의 경우 원저자의 뉘앙스를 살리려 노력하기 보다는 오히려 단순 무식하게 끊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예 독해가 되지 않는 것보다는, 그래도 읽을 수는 있는 게 더 나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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