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애주가의 대모험 - 1년 52주, 전 세계의 모든 술을 마신 한 남자의 지적이고 유쾌한 음주 인문학
제프 시올레티 지음, 정영은 옮김, 정인성 감수 / 더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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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처음으로 꼬냑을 마시고 난 뒤부터다. 카뮤 X.O.를 마셨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있는 술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후 몇몇 싱글 몰트 위스키와 고가의 사케를 접하면서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몇년 전만해도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요새는 곧잘 하곤 한다.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우리 나라는 '그 녹색병'이 워낙에 유명한 탓에 술자리에서 꼬냑이니, 싱글 몰트니, 준마이니 하는 얘기를 늘어 놓으면 불청객이 되기 십상이다. 유난을 떤다거나 잘난척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술은 다 똑같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참이슬 프레시'인지 '처음처럼'인지 묻지도 않고 시키면 화를 낸다. 주정으로 만든 공산품에도 어떤 감미료를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자연에서, 매번 다른 재료로,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 내는 술들의 맛이 어디 같을 수 있겠는가?


미술관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테지만 알고 보는 게 모르고 보는 것 보다 훨씬 재밌다. 그림은 그냥 보는대로 느끼는거지 하다가도 도슨트의 흥미로운 이야기에는 절로 귀가 쫑긋해진다. 술도 마찬가지다. 이 술이 어떤 재료를 어떻게 가공해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를 알게되면 씁쓸한 알콜이 목구멍을 타고 흐를 때마다 그 과정이 낱낱이 새겨지는 기분이 든다. 맛은 깊어지고, 경험은 풍부해진다.


<애주가의 대모험>은 1년 52주를 한 주씩 나눠 전 세계의 술들을 소개한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술들이 별처럼 쏟아진다. 읽고 있으면 술이라는 건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신기하게도 술은 모든 문화 모든 시대에 존재해왔다. 한 마디로 사람이 존재하면 술도 존재했던 것이다. 어쨌든 합법적으로 정신착란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러면 굳이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 마실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역시 술은 음식의 일종이고,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입맛에 맞춰 만들 필요가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술은 취하기 위해서만 마시는 게 아니다. 맛있게 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음주의 목적이다.


술도 잘 못 마시는 놈이 무슨 술맛을 논하냐고 하는 사람들에겐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좋은 술을 알아보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무 돼지고기나 먹을 수 있겠는가? 진짜 맛있고 좋은 고기가 아니라면 입도 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이 말해주는 술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세계의 술에 관심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위스키, 사케, 꼬냑, 와인 등 만드는 방법에서부터 재료, 브랜드, 맛까지 다양한 술들을 깊이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애주가의 대모험>은 세계 투어를 간략하게 정리한 팜플렛 같은 책이다. 깊이보다는 넓게. 전 세계의 술들을 한 눈에 훑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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