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감각 - 삶의 감각을 깨우는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쓰기의 감각>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와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데 뭐가 됐든 작법 실습서는 아니다. 어떤 단어를 골라야 하지? 대사는 어떻게 써야 하지? 플롯은 어떻게 구성하지? 에 대한 대답은 거의 나오지 않을 뿐더러 나왔다 하더라도 시원치가 않다. 사실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책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최고의 조언은 그냥 '쓰라'는 말 말고는 해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은 그냥 다른 사람은 어떻게 쓰나 정도를 참고하기 위해 읽어야 한다. 이런 책을 열심히 찾아 읽으면 언젠가 나도 글을 쓸 수 있게 될거야 라고 생각한다면 한참이나 잘못짚었다. 그냥 글쓰기에 뜻을 갖고, 글쓰기를 계속해나가는 사람들끼리 그 외롭고 힘든 작업에서 얻은 상처를 서로에게 까보이는 동병상련 공유기랄까? 뭐 이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넘어가야 한다.


물론 진짜 실습서에 가까운 책도 있다. 이런걸 원하는 사람은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를 찾아가기 바란다. 구체적인 쓰기 지침이 있는 책으로는 여지껏 이것보다 나은 책을 본적이 없다. 게다가 이 책은 문제집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술술 읽힌다. 읽는 재미까지 쏠쏠한 레전드 클라스의 작법서다.


반대로 재미를 극단적으로 추구하고 싶다면 역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다. <쓰기의 감각>은 자신의 개인사를 술술술 내보인다는 점에서 <유혹하는 글쓰기>와 비교될만한데 재미만 놓고 봤을 땐 여름 전어와 겨울 방어만큼의 차이가 있다. 둘 중에 선택을 하라면, 난 언제나 방어의 편이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땐 분명 기대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애초에 글쓰기 꿀팁 같은 건 있지도 않다고 생각하거니와 있다하더라도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고 생각했기에(엉덩이를 붙이고 끝까지 완성하라, 나의 초고도 당신의 초고만큼 엉망이다 등등) 나는 다른 것을 찾았다. 오랫동안 소설을 써온 사람이 형식의 족쇄를 벗고 자유롭게 내뱉는 문장의 향연, 때로는 통쾌하고,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뼛속까지 공감되는 말들을 하나하나 주워담으며 따뜻한 연대를 이뤄나간다. 하지만 기대는 머지않아 덜컹. 초반에 반짝하는 섬광에 눈이 멀어 끝까지 달리긴 했지만 페이지가 쌓일수록 지리멸렬한 전개에 입맛이 싹 달아나고 말았다.


앤 라모트의 팬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녀를 좀 더 잘 알게 될테니까, 마치 현실 세계의 친구가 된 것처럼 알 수 없는 유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팬이 되기엔 국내에 소개된 책이 너무 없다. 소설가인데도 불구하고 소개된 책들은 거의 에세이인걸 보면 작가 자신도 정작 자신이 말한 쓰기의 규칙들을 지키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이 책은 엄연히 소설 작법서다). 35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 수백개의 칼럼으로 쪼개 매일 하나씩 읽었다면 그런대로 읽을만 했겠지만 한권의 책으로 만나기엔, 속이 부대끼는 게 사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