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근대화‘에 직면한 전근대의 농민들 또한 새롭게 뻗어 나가는 국가권력의 촉수에 저항했다는 것. 둘째, 그들 또한 결국에는 자신들의 자율성을 헌납하고, 국가의 품속에서안정을 찾게 되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렇게 안전을 위해 자유를 포기한 이들의 후손이 바로지금의 우리들이라는 것.
즉,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하기 위해 진짜 필요했던 것은 정교한 추적과격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기반과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강력한 국가 기구의 조합이었다. 이 조합이야말로 동아시아에서 유독성공적이었던 방역의 본질이었다.
이런 불안과 비관이 갑작스럽게 널리 퍼진 이유는 간단했다. 과거사람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해주던 국가의 힘은 갈수록 약화되고있었던 반면, 국가 대신에 그 많은 기대를 안고 올라온 새로운 시대의주체들은 안정은커녕 불안을 더 확산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수 우파 진영 자신들도 오해하는 게 있었다면, 그것은 스스로가진정으로 탈민족주의적인 집단이라는 자기 인식이었다. 그들은 결코탈민족주의적 집단이 아니었다. 보수 진영의 변화는 민족주의에서진정으로 탈피했다기보다는, 대한민국에서 민족의 범위가 한반도전체에서 한반도 남부, 즉 남한으로 축소된 것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느 국가의 국민이든 자국민의 작은 슬픔을 타국의더 큰 비극보다 가슴 아파하고 공감하면서 도우려고 하지 않겠는가? 이런경향을 누군가는 편협한 종족주의라며 그르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이런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민족주의는 억압의무기인 동시에 약자를 위한 방패이기도 한 셈이다. 계층을 뛰어넘는 이런협력은 민족국가의 경쟁력을 또다시 강화하였고, 무엇보다 계급에 기반한초국적 협력을 시도한 공산주의의 매력을 크게 감소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부족 내의 협력이었다. 집단 간 경쟁에서승리하기 위해서는 더 큰 집단 단위로 움직여서 상대편을 제압해야 했기때문이다. 집단 간 경쟁이 내적 협력 의식을 고취하고, 어느 개인 스스로를집단을 위해 희생하게 하며, 상대편에 대한 경계심과 적개심을 타오르게하는 정서를 형성해낸 것이다. 부족적 삶이 인간 역사의 대부분을차지했기에, 집단 내 협력과 집단 간 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부족주의가인간의 사회적 정서의 밑바탕에 자리 잡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인식이 지난 10년간 급격히 변화했음에도많은 한국인들은 여전히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 분열적 감정을 갖고 있다. 마치 한국인들이 국가에 대해 불쾌해하고 불신하면서도 국가의 강력함을신봉하고 보호를 자연스럽게 요청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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