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잘못돼 지옥으로 떨어질 수는 있겠지만 아버표르트로는 절대 가지 않을 겁니다."
그는 안경을 벗어들더니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 아, 아버표르트로 가지 않는다고요?" 이제 그는 말까지더듬었다.
"하지만 난 거기로 가야 해요!"
"물론 그러시겠죠." 내가 말했다.
"유감입니다만 다른 배를 타셨어야 합니다. 이 배는 아버표르트로 가지 않아요."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이 배는 그럼 어디로 갑니까?"
"하여튼, 제가 아는 한 아버표르트로는 가지 않습니다. 선장님께 물어보시는 게 아마...."
겨울이 되었다. 철학자는 오랫동안 밤낮없이 일했다. 그는
‘인생의 헛됨에 대하여‘라는 두꺼운 철학책을 썼고, 명언, 고전의 격언, 성서구절 등을 빌려와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헛된지를 12장에 걸쳐 설명했다. 이제 13장만 쓰면 되었는데, 철학자는 이 마지막 장에서 이성적이고 책임감있는 인간이라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으로 삶을 끝내야 함을강조하며 책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때 머릿속에 화가가 떠올랐고, 왠지 그를 꼭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에 화가를 찾아가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