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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세는 사람 - 이경희, 푸른 테이프 세계의 두번째 이야기
문재웅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8월
평점 :
[푸른 테이프]라는 인상적인 소설로, 첫 번째 작품을 펴낸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이다. 전작에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주인공 재웅의 아내인 이경희에 대한 서사를 담아냈다.
소설은 평생 무언가를 세는 행위로 삶을 견뎌온 주인공이 스위스에서 조력사망을 선택하기까지의 오십이 년의 생을 밀도 있게 되짚어보는 작품이다. 다른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조력사망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감정적 옹호나 단죄 없이 묵묵히 응시한다는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저자인 문재웅 작가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자면,
"13년간 LG CNS, 4년간 SK C&C에서 근무했다. 조직 안에서 살아온 시간과 실제 삶의 기억들을 바탕으로 인간과 관계의 균열을 소설로 써왔다. '푸른 테이프'는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대구 떡방앗간집 딸로 태어난 주인공 이경희는 어릴 때부터 쌀의 양이나 두레박 개수를 세며 자란다. 이후 결혼, 출산, 시어머니의 치매 병수발, 그리고 유방암 진단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고통의 지표와 남은 항암 치료 횟수, 그리고 삶의 마지막 날짜를 '세는 행위'로 고단한 삶을 견뎌낸다.
소설은 이경희가 조력사망을 택한다는 결말을 첫 페이지에 미리 공개한다. 하지만 결말을 알고 봄에도 그녀가 지나온 오십이 년의 시간이 페이지마다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와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작품은 아픈 사람 곁을 무조건 지키는 것만이 사랑이라는 기존의 통념에 조용히 의문을 제기하며, 한 인간이 스스로 존엄을 지키며 매듭지으려는 선택을 있는 그대로 곁에서 바라봐주다는점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전해준다.
이 소설은 결말을 첫 페이지에 미리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지나온 시간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평범한 연애 시절의 대사 하나가,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완전히 다른 의미로 되돌아온다.
특히 조력사망이라는 다소 무겁고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과잉되거나 한쪽을 비판하지 않는다. 삶의 무게를 숫자로 계량하며 묵묵히 버텨온 한 여성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순간 그녀의 선택이 깊은 여운과 함께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