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 줍기
임효 지음 / 디자인PLP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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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를 이용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임효 작가님의 그림 에세이다. 저자는 몇 년전 수해로 인해 그동안 그려왔던 많은 작품을 소실하며 고통의 순간을 맞이했다. 하지만 장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무위의 자세로 새롭게 작품세계를 열어가며 이 책을 저술했다.

저자인 임효 작가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자면,

"전북 태생으로 1981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1985년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986년 과천국립현대미술관 개관기념전 <한국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에 출품하면서 한국화단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제7회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제13회 선미술상을 수상하는 등 상하이, 쥬리히, 바젤, 파리, 이스탄불, 피아, 싱가포르, 한국 아트페어 등에 참가하여 국내외에 주목을 받았다.

1986년 홍도 스케치 여행 중 배를 삼킬 것 같은 풍랑 속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구상과 추상의 ‘형상의 경계’를 고민했다. 인도 여행에서 얻은 ‘시간’의 개념은 토템, 선사시대 암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생성의 에너지와 서로에게 삶을 부여하는 상생의 가능성을 찾아 33회 국내외 개인전을 통해 끊임없이 종교, 철학, 문학 그리고 인간 관계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는 지금도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인지와 감각의 벽을 넘어 새롭고 낯선 시선으로 자연이 만든 선을 따라 심상을 찾아가고 있다.

유엔 ESCAP본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전주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홍익대학교 박물관, 한양대학교 박물관, 한국은행, 금호미술관, 한솔문화재단, 외무부청사, 고은미술관,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조선일보미술관, 제주기당미술관, 금호생명보험, 삼성의료원, SK연수원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책은 작가의 여러 작품들과 함께 전시 「연시連時, 시간을 잇다」를 통해 그동안 흩어져 있던 예행藝行의 흔적과 사유를 찾아볼 수 있다.

임효 자각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네 가지 조건이 필요며ㅡ 그것은 이론이기보다는 오랜 시간 붓을 쥐며 몸으로 체득하며 알게 된 것들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는 지극(至極), 말 그대로 온 마음을 다하는 일이다. 처음부터 솜씨가 좋을 수는 없다. 기교는 모자라도 괜찮다. 다만 한 번 그릴 때마다 대충 그리지 않고, 한 획에도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오래 버티다 보면 어느새 손은 길을 알고 사람들은 그를 ‘달인’이라 부른다.

둘째는 파격(破格)이다. 익숙해진 것을 의심하고 스스로 세운 울타리를 깨는 일이다. 자기 스타일에 안주하는 순간 그림은 그 자리에서 멈춘다. 새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듯 자기 안의 틀을 깨야 다음 세계가 열린다. 브라이스 마든이 문자의 형식에서 출발해 자유로운 추상선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파격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벗어나는 데서 시작된다.

셋째는 고졸(古拙)이다. 기술이 완전히 몸에 밴 뒤 그 기술을 다시 내려놓는 단계다. 잘하려는 마음을 버렸을 때 오히려 본질이 드러난다.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 쓴 〈판전(板殿)〉이 그렇다. 평생 쌓아온 기교를 모두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남은 자기 자신만을 써 내려간 글씨. 모든 것을 갖춘 뒤에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세계다.

넷째는 신묘(神妙)다. 혼을 다해 그렸을 때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머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이며 어느 한계를 넘어서는 때, 그 지점을 신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단계는 자연과 다시 만나는 경험, 사람들의 안목과 마주하는 순간, 그리고 두터운 인연 속에서 비로소 열린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평안했다면 나는 그림에 이토록 매달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줄은 화판이 되고 부채는 붓이 되어 춤을 추듯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그 모든 흔들림 덕분이다. 그림은 늘 순간의 인상이 내 심장을 뚫고 들어와 저절로 남긴 흔적이다.

한국적인 색채에 독특한 구조와 문양으로 눈에 확 들어오는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범상치 않은 그림과 함께 삶의 관조적인 자세를 느낄 수 있는 텍스트가 어우러지는 화보집을 읽는 느낌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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