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15 -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본격 한중일 세계사 15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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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의 동학농민운동! 피할 수 있는 사건이었나 역사적 필연이었나?
• 프랑스인에게 사랑받은 조선인 유학생이 권총을 꺼내 든 까닭은?
• 꼭두각시도 밟으면 꿈틀한다? 광서제의 자기 정치가 불러온 거대한 과●일본군이 경복궁으로 밀려드는 와중에도 고종이 도망가지 않은 이유는?
• 평양성부터 황해까지, 포연이 걷힌 뒤 드러날 청일의 명운은?
지방 수령들의 탄압이 심해지자 동학교도들은 처형당한 1대 교주 최제우의 사면·복권을 주장하는 교조신원운동으로 대응한다. 전국 곳곳에서 집회가 열리고, 특히 전라북도 김제의 원평취회에서는 무장투쟁의 기운까지 감돈다. 그곳의 지도부 중 한 명이바로 전봉준으로, 해산 후 고향으로 돌아와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맞서 민란을일으킨다. 고부를 장악하며 기세를 올린 농민군은 지방군과 중앙군을 꺾고 전주성에입성, 동학농민운동의 불길이 크게 솟구친다. 이에 놀란 고종은 화약을 맺어 농민군을달래는 한편 청군을 조선 땅에 불러들인다. 이에 일본군도 군대를 급파, 긴장감이 고조된다. 마침 영국과의 불평등조약 개정에 성공한 일본은 외교적 자신감을 품고 강경책을 추진, 경복궁을 공략해 고종을 손아귀에 넣으며 기선을 제압한다. 곧이어 서울 남쪽아산의 육지와 바다에서 전초전을 치른 청일 양국은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하는데….
비로소 시작된 청일전쟁의 주요 전장은 평양성과 황해! 중화 질서의 마지막 자존심을지키려는 청과 열강으로의 진입을 꿈꾸는 일본 사이에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이 벌어지니, 과연 전쟁의 불길은 동양삼국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고차원적이고 세련된 교리를 갖춘 동학이지만, 사실 19세기 당시 밑바닥 백성과 동학의 가장 큰접촉면은 도착, 주문, 주술, 부적 같은 논두렁 컬트였지요. 동학농민군이 총알을 막아주는 방탄부적을 두르고 다녔다 해 이를 전근대적 아둔함이라 고개를 저을 수 있겠지만, 조금 넓게 보자면서양 병사들이 걸고 다닌 십자가 목걸이나 일본 병사들이 두르고 다닌 천인침과 아주 크게 다른맥락은 아니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리 두루뭉술한 믿음의 영역에 무슨계측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겠지요." _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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