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언어는 퇴화의 증상이자 원인이다. 자기도 모르게 ‘이것 참 죽겠네‘ 라거나 ‘이러다 죽겠어‘라고 수시로 생각하거나 말한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촉발된 생사 기억이 당신에게 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물론 당신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그 말을 했을 턱은 없지만 두려움에 바탕을 둔 감정이 느껴질 때 당신의 마음은 실제로 그런 의미를반영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말을 전혀 내뱉지 않았더라도 두려움에서나온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가 뛰어난 성과를 올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이유 때문이다. 스포츠에서뿐만 아니라 보고서를 쓸 때, 연극 공연을할 때, 중요한 대화를 나눌 때를 비롯한 거의 모든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에 있을 때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 편안한 상태인지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원천기억의 분류명이다. 즉 두려움에 기반한 기억인지 아니면 사랑에 기반한 기억인지에 달려 있다.

내면의 법칙에 따라 살기로 선택하면 내 경우처럼 상대와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전적으로 다른 의견을 품고 있더라도 여전히친밀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정을 나누는 친구를 둘 수 있다. 심지어 그관계를 통해 배움을 얻기도 한다.
정치계에서 영향력이 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민주당소속이든 공화당 소속이든 정치인들은 밀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대중들의 의견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지 살펴보고 이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그들이 제시하는 진술과 정책은 자신들이 좋다고 생각하거나 최선이라고 믿는 것과는 거의 관련이 없을 때가 많다.

외적인 요소가 고통을 유발한다고 믿었지만, 사실 고통의 근원은나의 내적인 상태였다. 나는 외적 환경을 잘못 이해했다. 당시에는 뚱뚱하거나 여드름이 있거나 외모가 추한 사람은 끔찍하고 불쾌해서 남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었다.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니다. 외면적인것이 내면적인 가치를 결정하는 법은 결코 없다.
외적인 상황을 통해 내적인 가치를 얻으려고 하면, 절대 인지 못할공산이 크다.

내면의 법칙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공감‘이 될 것이다. 여기서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고통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낀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 설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윤리의 근본 원리인 황금률the Golden Rule에 따라서 내가 남들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들을 대접하기보다는, 백금률 the Platinum Rule에 따라서 상대방이 대접받고 싶어 하는 대로 상대를 대접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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