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범죄는 재난이나 교통사고보다 더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한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훼손됨으로써 안전감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사건 후 피해자가 형사사법 절차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데, 변호인의 조력을 포함해 다양한 권리를 보장받는 범인과 달리, 피해자는 기껏해야 참고인이나 주변인으로 처우 받으면서 크고 작은 불편과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심지어 사람들이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여러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사건에 대해 말할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한다. 피해자가침묵이라도 하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고, 실언이라도 하면 그것을 근거로 진정성을 의심한다. 누군가는 위로와 지지를 가장해 범인을 용서하라고 넌지시 압박하기도 한다, 죄는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면서. 이런 경험은 피해자에게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감각을 유발함으로써 회복을 방해한다.

개인차가 크고 고인과 유족의 관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그간의 경험상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사건으로 사망했다는 것을유족이 온전히 인식하는 데만 최소 1년 가량이 소요된다. 사망한 사람이 자녀이거나, 고인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거나, 심하게 훼손된 경우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지적으로 사건을 인정한 후에도 애도 과정에만 최소 3년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살을 시도하며 그중 일부가 자살에 성공한다. 하지만 보다 많은사례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안타깝게도 1차 피해가 아닌 2차 피해에 있다. 여기서 1차 피해란범죄 행위로 피해자에게 야기된 육체와 정신적 손실을 말하며,
2차 피해는 범죄 사건이 종료된 이후에 피해자가 겪는 일련의손실 (예: 사생활 침해나 근로 능력 상실로 인한 실업과 경제적 어려움)을, 그리고 3차 피해는 범죄 피해로 인한 장기 후유증(예: 아동기에 학교폭력에 지속 노출된 사람이 성인기에 자살할 확률이 더 높음)을일컫는다.

공감의 사전적 정의는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해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기분이다. 이와 달리 심리치료 장면에서공감은 다른 사람의 내면세계와 내적 준거 틀을 이해하는 것을일컫는 용어로 사용되며 ‘같은 경험이 없어도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이해하되, 타인과의 심리적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강조된다. 이것이 바로 공감이 ‘동감‘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피해자가 합의 이후에 피해자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다른 이유로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해결하고자 하는동기를 들 수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범인을 용서해서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합의 요청에 응한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범인을 용서할 수 없음에도 그를 용서했다고 말하는 모순에 빠진다. 즉 인지 부조화 상태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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