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그의 보편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정치적이고 왕조적인 모든 요소들은 예수의전기에서 엄격하게 삭제되었다. 그런 까닭에 예를 들어, 열심당원(기원전 1세기에활약한 유대교의 정치적, 종교적 과격파 - 옮긴이)이나 에세네파와의 관계 역시 전적으로 삭제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관계들은 아무튼 몹시 난처한 문제였을 것이다. 신적인 존재가 얽히고설킨 정치적이미 왕조적인 음모에, 그것도 궁극적으로 실패로 끝난 음모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근사하게 보이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결국 예수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에 담겨 있는 내용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되었다. 복음서에는 1세기에 로마의 지배를 받던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엄격히신화적인 이야기와 모든 신화에서처럼 주로 영원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나그함마디 문서>에만 근거하여 판단한다면 예수의 직계 혈통이 존재하리라는 가능성은 상당히 그럴듯해 보인다. 소위 ‘영지주의 복음서‘ 라고 하는 책들 중에는 신약 성서의 책들만큼이나 크게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다. 따라서 그 복음서들이 명백하게는 암시적으로든 증거를 제시한 것들은 아무리 논쟁의 여지가있을지라도 깊이 생각하는 일 없이 간단히 처리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를테면 십자가에 대신 달린 사람이나 베드로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의 계속적인 반목,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결혼, 사람의 아들 의 출생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신학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예수 시대의 역사는 오늘날의 역사보다 더 복잡하고 다면적이었으며 실제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이 결론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의 생애와 그를 근거로 삼고 있는 종교의 내력으로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리고 이때도 여전히 기독교에 도전할 작정은 아니었다. 단지 우리가 다다른 결론이 지지할 만한 것인지 어떤지를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성서 자료를 철저하게 고찰하면서 그것이 지지할 만한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의 결론은 지지할 만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그럴듯한 것이기도 했다.
조사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기독교 옹호론자도 기독교 배격자도 아닌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였다. 비교比較 종교학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는 데다 연구까지 한덕에, 우리는 세계의 주요 종교에 내재된 정당성의 핵심에는 대체로 공감을 느끼면서도, 그 상부 구조를 이루고 있는 교의, 신학 체계, 장구裝具에 대해서는 냉정한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교의를 존중해 주면서, 어느 특정교의만 유일한 진리로 용인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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