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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희극인 - 희극인 박지선의 웃음에 대한 단상들
박지선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11월
평점 :
작년 이맘때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개그맨 박지선의 유고집이다. 어머니와 함께 세상을 등졌기에 그녀의 많은 팬들과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던 죽음이었는데, 그녀의 밝은 얼굴 이면에 그렇게 힘든 고통이 있는줄 몰랐다. 여자 연예인으로 메이크업도 하지 못하고, 햇빛 알러지가 있어 밖에도 나가기 힘들정도였다니 그녀의 고통이 미루어 짐작이 간다.
아울러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친구 같은 어머니도 딸의 죽음을 확인하고 바로 세상을 등졌으니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평소 독서를 좋아했지만 책을 남기지는 않았다. 이 책은 박지선의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힘을 모아 1주기 추모 기념으로 그녀가 남긴 꽁트와 강의록 그리고 트위터를 모아서 엮어냈다.
박지선이 직접 그리고 쓴 노트에는 207편의 글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주로 간단한 일정부터 강연을 위해 정리한 자료, 그림, 그리고 삶에 대한 단상들이 이었는데 그중 꽁트를 위한 아이디어 메모가 제일 많았다. 개그콘서트 시절부터 코미디를 향한 그녀의 열정을 볼 수 있는 글들인데 남모를 고통을 가지고 있으면서 웃음을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고민한 흔적이었다.
개그우먼이자 라디오 DJ로 활동하며 많은 선후배들, 동료들과 가까이 지냈다고 하는 그녀의 지기들이 모여서 추모글은 일체 배제한체 직접 쓴 글들만 모아서 책으로 냈다. 주로 어머니를 중심으로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안타까운 죽음을 잊은채 밝은 희극인의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은선 기자의 박지선에 대한 글이 인상적이라서 올려본다. 아무튼 그녀와 어머니 모두 이제 고통을 잊고 영면하기를 기원한다.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 줄로 착각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지돌이의 목소리가 점점 더 생생하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만들다라는 표현 대신 맹글다라고 말하는 습관, 가족들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연기할 때의 어투, 작은 깨달음을 주는 사람에게 언제나 멋쟁이라고 외치던 지돌의 억양이 구석구석에서 생생하게 묻어 나왔다. 어떤 기록이 그 사람의 전부일 수는 없지만 아주 잘 담아낸 일부일 수는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실히 느꼈다.
지돌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같은 내용도 그라는 필터를 통해 들으면 여지없이 전에 없던 활기를 뗬다. 나나 다른 친구들이 전달하면 맥 빠지는 이야기를 그토록 웃긴 농담으로 살려내곤 했던 지돌이의 솜씨에 나는 늘 경탄했다. 친구들끼리만 듣고 넘기기에는 아까웠던 소소하고도 위대한 유머 감각을, 지돌이가 사랑했던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독자 여러분과 다시 한번 공유할 수 있어 기쁘다. 지돌이는 친한 친구들이 이름을 부르는 대신 지돌이라는 별명으로 불러주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이제 이 책을 통해 그와의 거리감을 한결 좁힌 여러분도 편안하게 마음속으로 그 부름에 동참해 주길, 지돌이 역시 바랄 것이다.
지난해 지돌이에게선 공개 코미디 무대가 사라진 데 대한 아쉬움이 짙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과 노력과 사랑을 바쳐온 무대에 조명이 꺼진 뒤 지돌이가 느꼈을 박탈감을 최대한으로 깊이 헤아려 넉넉하게 껴안아주지 못했다는 점은, 내가 그에게 가지고 있는 수백 가지의 미안함 중 가장 큰 것이다. 이 책은 그만을 위해 다시 마련된 작은 무대다. 이 무대의 조명만은 다시는 꺼지지 않도록 나는 오래도록 여기에 실린 지돌의 유머를 기억하고 이야기할 것이다. 지리멸렬한 일상을 최대한 사랑스럽게 바라보려는 귀한 노력의 시선을 가졌던 희극인을,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낮춰 웃음의 소재를 자처하되 다른 사람을 향한 존중을 언제나 잃지 않았던 그의 직업적 긍지를 잊지 않을 작정이다.
여기 모인 글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지돌이의 눈이자 마음이다. 나는 앞으로 내 친구 멋쟁이 희극인이 떠오를 때마다, 종종 좋아하는 인형에 얼굴을 파묻던 지돌이처럼 이 책에 코를 박고 숨을 훅 들이켜련다. 만질 수 없다는, 따뜻하게 포옹할 수 없다는, 눈을 맞추며 손을 잡고 함께 실컷 웃을 수 없다는 데서 오는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을 앞으로는 이 책이 달래줄 것이다. 물성(物性)은 그런 가치가 있다.
호호호. 하하하. 깔깔. 푸하하. 큭큭큭. 키득키득. 낄낄. 배시시. 헤헤. 히죽히죽. 세상의 모든 웃음소리들이 〈멋쟁이 희극인〉의 곁에 점점 더 많이, 영원토록 모여들길 소망한다. 여러분이 그 한 축을 기꺼이 담당해준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