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작 샌델이 심혈을 기울여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실천적문제 보다는 심리적 측면‘이다. 그는 능력주의가 과도해지면서 능력과도덕 판단력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의분석에 따르면 능력으로 편을 가르고, 한 편이 성과를 독점하면서, 등력과 성과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계급이 생기고, 이를 세습화하기 위한범법적 시도가 출현하고, 이를 독차지한 사람들의 오만이 극치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탈락한 사람들은 부의 상실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잃고 굴욕감을 갖게 되어, 이것이 심화되면서 사회적·정치적 긴장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근원도 여기서찾을 수 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의회에서 이루어지는 정책 토론의 위태로운 상황을 언뜻 보기만 해도 그런 생각은 멈추게 된다. 정치를 잘하기 위해 기술관료적 전문가들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시민적 덕성이 요구된다. 공동선에대해 숙고하고, 모든 면에서 시민들과 일체감을 갖는 능력 말이다. 지난 역사를 보면 정치적 판단 능력과 엘리트 대학 진학 능력 사이에는 연관성이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학력이 떨어지는 자들보다 가장 뛰어나고 가장 똑똑한 자들이 정치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능력주의적 교만에 기초한 허구다.

학력주의라는 편견은 성공한 자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준다. 통계에따르면 이들은 인종주의나 성차별주의에 대해 반대한다. 그러나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편견을 갖고 있다. 자신들이 그들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음을 알아도 그에 대해서는 별로변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교육받지 못한 이들은 깔봄을 당해도 싸다는 편견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분리를 통한 단결이라는 도덕적 모순은 "우리는 모두 함께입니다"라는 구호의 공허함에서 가장 돋보였다. 그것은 상호 간 책임을실천하고 공통의 희생을 감수하며 나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예상을 뒤엎는 불평등과 정당 사이의 알력이 불거졌다. 이는 미국이 덴탈 마스크 등을 국내생산할 수 없게 만들었던 시장 중심 세계화‘가 급여 및 양질의 일자리를 수없이 빼앗아 버린 결과였다.

기술관료적인 정치 개념은 시장에 대한 믿음과 강하게 연관된다. 그것은 꼭 국가 개입이 일체 배제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를 의미하지는않는다. 하지만 시장경제야말로 공공선을 달성하는 데 기본적 도구라여기는 것이며, 따라서 더 큰 범위에서 시장을 신뢰하는 것이라 할 수있다. 정치를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기술관료적 정치가 이뤄진다. 그것은 실질적인 도덕적 논쟁에 대한 공적 담론을 실종시켰으며, 논란이 있는 이념 문제를 마치 경제 효율 문제 처럼 전문가가 독단적으로 처리할 문제인 듯 취급했다.

노력과 재능 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미국인의믿음은 더 이상 사실과 맞지 않는다. 기회 균등에 대한 담론이 과거와같은 반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라 볼 수 있다. 사회적 이동성은 더 이상불평등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없다. 빈부격차에 대한 진지한 대응은 무엇이든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직접 다뤄야만 하며,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돕는 방안으로는 무마될 수 없다.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이다. 시장 주도적 세계화는40년 동안 계속되며 정치 담론의 장을 공동화했고, 보통 시민들을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포퓰리즘의 반격을 촉발했다. 그 반격이란 텅 비어버린 공론장에 무자비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민족주의를 채워 넣으려는 움직임이다.
민주정치가 다시 힘을 내도록 하려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보다 건실한 정치 담론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 공통의 일상을 구성하는사회적 연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능력주의를 진지하게 재검토함으로씨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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