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역시 <모나리자> 만큼이나 수수께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서양미술사상 최고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완성한 회화는 10여 점에불과하다. 오히려 레오나르도는 현대 문명을 낳은 온갖 기기의 원리를창안한 과학자이자 해부학자, 수학자, 음악가, 시인 그리고 도시설계가와무기발명가로서 더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흔적을 빠짐없이 기록한것을 ‘코덱스(연구 노트)‘라 부른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7,000여 장에달하는데, 유럽 여러 나라의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특이한 점은 코덱스에적힌 그의 글씨가 모두 거꾸로 쓰여 있어서, 거울에 비춰봐야 제대로 읽을수 있다는 것이다. 또 여기에는 레오나르도의 가계부 기록까지 들어 있어,
그의 냉철한 경제관념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재미를 더한다.
회화 위주로 작품을 선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능력의 한계였다. 또 서양회화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나, 우리 미술도 조선시대 회화만을다룬 것 역시 같은 이유다. 작품은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것 중심으로 뽑을수밖에 없었다. 그런 탓에 유명한 그림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많은이들이 거론한 작품들이라 가능하면 다른 각도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며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 구도, 색채 같은 것의의미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춰보았다.
이런 취향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한 것이 정물화다. 정물화가 독립적인 회화장르로 발달한 것도 17세기 네덜란드에서였다. 정물을 뜻하는 영어 ‘stilllife‘까지 네덜란드어에서 나올 정도였으니까. 새로운 미술 시장의 주역이된 신흥 중간 계급은 실제 세계를 담은 그림을 좋아했다. 그런 그림은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 없이도 감상할 수 있고, 한눈에 무얼 그렸는지 알수 있을 뿐 아니라 장식용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입맛에 딱 맞는 것이 바로정물화였다.
다비드가 이 그림을 하늘이 준 기회로 알고, 혼신을 다해 그린 것은나폴레옹의 영웅적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선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진실은 나 냉소적이다. 나 ㅔ옹은 화창한 봄날, 노 타고 편안하게알프스를 넘었다고 한다.
그림 속의 저울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있다. 보수와 혁신의절묘한 균형이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페르메이르는 그림을 통해조용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균형의 이미지는 단순히 내용을 설명하는수준에만 머무르지 않고 회화적 균형의 아름다움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빛과 어둠의 절묘한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 즉 왼쪽 창문에서들어오는 빛이 배경의 벽과 여인, 책상을 은은하게 밝히면서 화면을사선으로 가르며 이등분한다. 밝음과 어둠이 거의 같은 영향력을행사하면서 그림의 완벽한 균형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베르니니의 여인 조각은 너무나 생생한 관능미를 갖고 있어 종종 구설수에오르곤 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성 테레사의 법열>이다. 로마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에 있는 이 작품은 베르니니가1645~1652년에 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