멩기스투는 전쟁과 기근과 집산화로 초래된 폐허의 흔적만 남겼을 뿐 그어떤 영속적인 제도나 이데올로기도 남기지 못했다. 자기 멋대로 권력을휘두르면서 자신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의사 결정도 이루어질 수 없도록만들었다. 그가 그토록 공들여 설립한 당 또한 개인적인 통치 기구에불과했다. 혁명의 화신을 자처하던 그가 도주하면서 혁명도 사라졌다.
그의 뛰어난 능력 중 하나는 감정을 숨기는 것이었다. 예컨대 그는겸손했다. 필요한 경우에는 만면에 미소를 짓거나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울림을 자아낼 수도 있었다. 그의 지지자 중 한 명이 말했듯이 그는 물인동시에 불과 같았고 한 마리의 양이면서 호랑이였다.
결국 독재자에게 가장 큰 위협은 국민과 독재자 자신이다.
감시는 우울한 어떤 것이 아니다. 아주 조금만 역사를 돌아보아도20세기와 비교하면 오늘날은 독재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개인숭배로 자신을 둘러싸는 독재자들은 필연적으로 그들을둘러싼 추종자들이 만들어 낸 환상을 굳게 믿게 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결국 혼자서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들은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고 도처에 적이 있다고 믿는다. 자만심과피해망상이 커지면서 이미 손에 쥔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보다 많은권력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내리는 판단에 의해 너무나 많은 것이좌우되기 때문에 때로는 아주 사소한 계산 착오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해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을 제외하면 오늘날의 독재자들은 자국민에게 공포를주입하고자 했던 20세기 절정기의 선배들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민주주의의 죽음>이나 자유주의의 종말을 선언하는 책들이 한달이 멀다 하고 출간된다. 최근 10여 년 동안 전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의격이 낮아지고 비록 일부지만 가장 견고한 의회 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자유의 수준이 후퇴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격언에도 있듯이자유를 얻으려면 끊임없는 감시가 필요한 법인데 그러자면 권력을도난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공포 없는 우상화는 없다. 20세기의 정점에서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은폭력을 동반한 위협으로 권력을 유지한 지도자들을 찬양하는 일에 억지로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마오쩌둥이나 김일성 치하에서 지도자의 이름을조롱하는 행위는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질 충분한 사유가 되었다. 지시에맞추어서 울거나 환호하거나 함성을 지르지 못하면 중형에 처해졌다.
무솔리니나 차우셰스쿠 치하의 편집가들은 무엇이 되고 무엇이 되지않는지 매일 지침을 받았다. 스탈린 치하의 작가나 시인, 화가 등은 그들의찬양이 충분히 진실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