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의 발전은 분단과 독재를 거치며 기형적으로 이루어진것이며, 외교는 미국과 일본 등에 종속되었으며, 이런 기형적 발전과종속성으로 수혜를 본 기득권 세력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검찰, 재벌, 보수언론은 그런 대표적인 기득권이니, 이를 바로잡기위해서는 검찰개혁을 해야 하고,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려야 하고,
비정규직을 없애야 하며, 투기 세력과 다주택자가 주택 가격을 끌어올릴것이니 국가의 규제와 과세를 통해 이 시장을 통제해야 하고, 재개발로공동체의 터전을 잃는 일이 없도록 공동체가 살아 있는 ‘마을‘을 지원해야하고, 북한,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동북아에서 자주적인 외교를 할 수있어야 하고, 일본에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정략적인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왔던 것일가능성이 컸다. 아마 그들 중 다수는 정말로 철도 민영화가 시장에공공성을 팔아넘기는 부정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김대중·노무현 시절의 민영화에 대해서도 불편한 감정을 크게 가졌을것이다. 이런 좌회전은 민주당 당내에서 호남 지역 인사에 기반을 둔파벌이 최종적으로 패배하고, 이해찬과 문재인이 이끄는 운동권 출신집단이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더욱 선명해졌다.


마치 마르크스와 레닌, 러시아 10월 혁명을 얘기했지만 뒤에서는 서독,
프랑스, 미국 등 자본주의 세계에서 수입한 사치품을 즐기고, 자녀들을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의 좋은 대학과 근무지로 보내고자 갖은 노력을했던 노멘클라투라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 위에 있는 1%를 비난할 때는 과거 급진파이자사회주의자로서의 논리를 동원했다. 누군가가 자신들의 계층 대물림과세습 시도를 비판할 때는 ‘자식을 위해서 사유재산을 원하는 대로 쓸 수있는 것 아니냐‘는 대중적 자유주의 논리로 맞받아쳤다. 그들이 자신을성찰하고 통일된, 새로운 인격으로 거듭났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중적언사를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말하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결정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586의 경우 그들의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은무언가 강한 불일치를 보이고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지배엘리트가 스스로를 당당한 지배 엘리트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이런불일치는 국가 공동체를 이끌 때 무언가 심각한 문제들을 만들어낼 수밖에없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상황에서, 586 논쟁에 불을 지핀 ‘조국 사태‘가 터진것이었다. 조국 사태는 여전히 독재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뜨거운심장으로 살아가는 586이 실제로는 자산 증식과 계층 세습에 골몰하는사람들이었다는 스테레오 타입을 드라마보다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사건이었다. 그들은 반일을 선동하는 노래인 ‘죽창가‘를 부르면서유니클로를 구매하는 청년들을 비난했고, 그러면서도 일제 렉서스 차를타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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