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이 컨베이어 벨트 작업의 가장 파괴적인 영향력이 아닐까 싶은데,일을 하다 보면 그냥 아무 느낌이 없어진다. 내 손으로 하는 행동인데어떠한 실재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수백 마리일 때는 병아리들이 지나가는 거지만 수천 마리일 때는 삑삑대는 인형들이 지나가는 거고 수만마리일 때는 노란 털 뭉치들이 지나갈 뿐이다. 컨베이어 벨트에는 어떤 감정이건 그것이 얼마나 강렬했건 순식간에 무뎌지게 만드는 힘이있었다.
나는 영화에서 악당 두목이 절벽에서 떨어질 때 내지르는 것과 비슷한 강렬함을 담아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털복숭이 악마는 내 앞에서 휴지를 물고 신이 나서 뛰어다닐 뿐이었다. 그토록 절박하게 가지마‘를 외친 건 살면서 그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남은 휴지는 기껏해야 포스트잇만한 크기였다. 원래의 용도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험한 꼴을 당하게 될 항문에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하고 메모를 남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