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김구와 이순신을 비롯한 각종 민족주의적 영웅을 기념하고,
일본에 대한 반발심을 정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국민교육헌장을비롯하여 민족주의적 수사를 계속해서 교육을 통해 주입한 지도자였다.
전두환 또한 이런 박정희식 민족주의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그러니 이런교육을 받고 성장한 60년대생들이 강고한 민족주의자가 되지 않기란힘들었다. 그런 면에서 86세대의 강한 민족주의는 박정희의 유산이라고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물론 실제로는 유신 독재가 신군부 독재에 비하여 훨씬 엄혹하였지만,
공유된 상상은 언제나 실제보다 중요했다. 이런 거악에 맞서 한국의 근대사전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투쟁 방법론과 목표, 그리고 새로운우군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박현채와 리영희는 그런 점에서 이후 86세대의 관점에 가장 큰 영향을끼친 양대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둘로 대표되는 관점은 이후1980년대를 목전에 둔 1979년에 그 유명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으로종합되어 학생운동 세계관의 기본적 골간骨幹을 형성했다.


조국 사태에서 조국은 단순히 일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특정 집단, 소위
‘386(1990년대 당시에 30대이자,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한 세대를가리키는 말)이라고 불리었고 지금은 대다수가 586 인 집단의 상징으로떠올랐다. 조국의 비판자들은 586이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뒤로는각종 특혜와 편법을 통해 지위를 형성하고 자녀에게 세습하고자 하는위선적인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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