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나간 내 청춘에 대한 고백이고, 그 백발의 청춘에대한 장례이다. 너무 멀리 달아난 청춘을 복기하다 보니 자전적인 사실 Face에 상상 magination을 보탤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장르를 굳이정의해보라면 팩션 Faction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영원히 보내고 싶지 않은 어머니에게 바친다. 일산에서 조연희
그런데 다다이스트였던 쟈크리고는 삶이란 버리고 말고 할만큼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삶을 경멸하는 유일한 방법은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나. 그럴 수 있을까. 내일아무 일 없었다는 듯 등교할 수 있을까.
칼집 속에서 칼들이 얼굴을 묻고 우는 것만 같았다. 붉은 녹물을 흘리고 있는 칼은 가슴이 폭폭 녹이 슨 언니 같았고, 혼자 울다 이가 빠진 엄마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 아무에게도 칼을 들이밀지 못할 내 모습 같기도 했다. 나의 칼은 분노에 녹슬고, 내 정의는 부식되어 자멸하고 말리라. 나의 칼은 붉은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결국엔 파 한쪽 베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두 동강 난 칼을 주워서 조용히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가난이 삶의 근본적인 경쟁력에서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을그때는 미처 몰랐다. 원래 인생이란 그처럼 부당하고 불공정한 거래였다. 출발점이 다른 경주였다. 가난이 유전적으로 대물림될 수 있다는 사실만큼 불공평한 일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내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연장 선상이고, 앞으로도 계속될내 미래라는 사실만큼 절망적인 것이 또 있을까. 내가 아직 도심 외곽을 떠돌고 있는 것 또한 내가 달동네 철거민이어서 일까. 이것이 가난의 알고리즘임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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