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Ruth Bader Ginsburg

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193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코넬대학교에 입학해 석사 과정을 마친 후 1956년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한다. 당시 〈하버드 로 리뷰에 참여한 첫 번째 여성이 된다. 이후 뉴욕에서 일자리를 구한 남편을 따라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에 편입학해, 공동수석으로 졸업한다. 하지만 여성 차별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교수의추천으로 재판연구원이 된다. 럿거스대학교 로스쿨,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의 교수로 재임하면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미국시민자유연맹에서 여성 인권 프로젝트를 창립하는 등 다방면으로 젠더 차별 이슈와 관련해 활동을 펼친다. 1980년 컬럼비아 특별재판구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었고,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을 받고 상원의원에서 96대 3으로 통과되어,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로 연방대법원 대법관으로 임명된다.
오랫동안 맡은 여러 사건을 통해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꾸준히 의견을 개진했고, 대중적으로도 많은 지지를 받아왔다. 2020년 9월 18일,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긴즈버그의 소수 의견을 보고 우리는 자유의 핵심 요소를기억해야 한다.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소수 의견을 제기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낼 권리가 필수다. 모든 견해에 귀기울여야 비로소 시민은 제대로 알고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소수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때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긴즈버그가 자유에 대해 쓴 글에는 세 가지 주제가 있다.
이에 대한 동등한 보호, 생식의 자유, 시민권이다. 모두긴즈버그가 주장하는 자유의 일면이다. 헌법은 만인이 사회에서 평등한 지위와 입지를 갖추도록 해야 하며, 여성이나소수 인종을 자별하지 말이야 한다는 것이다.

법에 자유를 더 깊이 새겨 넣기 위해 긴즈버그만큼 많은일을 한 사람은 드물다. 그녀는 합법적인 인종 분리를 종식하기 위해 법으로 전략을 세웠고, 이 점에서 러시모어산에모습을 남긴 서굿 마셜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의 법조인이다. 긴즈버그는 법을 통한 여성해방운동에 앞장서는 업적을 남겼다. 그녀는 법정에서 승리를 거두거나 반대 의견을 제기하면서 여성과 모든 시민을 평등권에 기초해 보호하는 헌법의 진정한 비전을 제시했다. 다음 내용은 대중적인아이콘이자 헌법 자유 수호에 앞장선 법조인, 긴즈버그에대한 증언이다.

이러한 법은 남녀가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데 장벽을 세워 성차별 없는 평등을 방해할 뿐이다. 여성의 행동과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 관념에 힘을 실어줌으로써여성에게 손해를 끼치는 법은 법 아래 평등한 정의를 위해200년간 헌신해온 미국에 걸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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