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합리론을 대변하는 네덜란드의 철학자인 스피노자 Baruch deSpinoza는 『에티카』에서 ‘사랑은 외부 원인의 관념에 동반하는 기쁨‘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내부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사람이나 사물 등 외부의 존재로 인해 생기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청춘들은 자유롭고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을 소유하고 있기에, 삶의 주체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자유로운 만큼 방황이라는 불안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참된 삶은 노력할 가치가 있는, 살아갈 보람이 있는, 그리고 돈이나 쾌락이나 권력을 훨씬 능가하는 그무엇이 아닐까. 개츠비의 삶이 위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아갈 길이 불확실하기에, 삶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생각해 보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선택이란 어떤 것을 택하든지 두려운순간이다. 그래서 앙드레 지드는 ‘선택이 내게는 고르는 것이라기보다는 고르지 않는 걸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선택은 미리 준비된 사람의 몫이다. 왜냐하면 이것이냐 저것이냐 망설이는 순간, 시간은우리에게서 멀리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카잔차키스는 그의 자서전 『영혼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삶을 가장 풍성하게 만든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삶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 호메로스, 붓다, 니체, 베르그송의 책들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는 조르바에게서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침을 받았다며 이처럼 말했다.

우리는 종종 출구를 찾기 힘든 삶에 갇혀 방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방황한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또한 많은 것들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질병, 가난, 실패, 외로움,
죽음, 다른 사람의 평가 등등.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변화‘ 이며 그 과정을 통해 만나게 될 좌절들이다.

왜 쇼펜하우어는 우리에게 생의 의지를 부정하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닷물 속에 빠졌을 때 허우적거리기보다 차라리 힘을빼고 바닥에 닿아야 다시 떠오를 수 있는 것과 같지 않을까? 고뇌와고통스러운 현실의 삶 속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할수록, 그 고통은 더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럴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체념의상태에 도달할 때 마음이 더 편안해지고 평정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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