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대조적으로 나는 가능한 기록 보관소 자료들을 이용하는 편을선호하는데,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공개된 고위 지도자들의 발언문은문장이나 문단을 통째로 들어낸 대목들이 있고 이러한 누락은 홍위병자료에서 특히 심하지만 이들 자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체상의 소소한수정이나 더 심대한 편집상의 삭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고 이러한편집상의 개입은 많은 발언들의 전반적 의미를 변화시킨다. 둘째, 모임의발언을 담은 회의록 전체가 중국 본토에서 공식적으로나 아니면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중국 밖으로 유출된 홍위병 자료에서 줄곧 검열을 당해은폐되어 왔다. 셋째, 역사가들은 지도자들이 훗날 그에 관해 의견을 밝힌모임들에 큰 비중을 두어 왔지만 결정적 사건과 결정들은 그냥 무시되거나은폐되어 왔고, 베이징의 중앙 기록 보관소에 접근할 수 있는 당역사가들이 출간한 중국 지도자들에 관한 매우 믿을 만한 공식전기들에서도 이런 내용들은 빠져 있어 그 점에서는 전적으로 신뢰할 수없다. 본문에서 살펴본 대로 1959년 3월 25일 상하이 진장 호텔에서 열린모임의 회의록이 이런 경우인데, 이 모임에서 마오쩌둥은 외국과의 약속을지키기 위해 전체 곡물의 3분의 1을 징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우리는 마오쩌둥이 대약진 운동 기간 동안 그에게 반대했던 모든 이들의삶을 망가뜨리게 될 문화 대혁명의 불을 댕기며, 류사오치를 제거하기로결심한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유산전체와 역사에서 자신의 위상이 걸려 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갈수록위협적인 그의 적수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것이다.
기근을 조사한 연구자 가운데 단 한 명만이 천이쯔의 주장을 진지하게받아들였는데 바로 1996년에 나온 자신의 책 『굶주린 유령들HungryGhosts』을 위해 천이쯔를 인터뷰한 재스퍼 베커Jasper Becker다.
아래에 최초로 제시되는 기록 보관소의 증거들은 천이쯔의 주장이옳았음을 밝혀 주며, 1958부터 1962년까지의 대기근 동안 출잡아서 최소4500만 명이 조기 사망했음을 보여 준다.